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SK어스온이 전체 자산의 30%에 해당하는 투자지분을 현금화했다. 이번 투자지분 현금화로 SK어스온 전체 자산에서의 현금성자산 비중은 절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공격적인 현금 확보의 이유는 신사업인 탄소 포집·저장(CCS·Carbon Capture & Storage) 사업의 확대 때문이다. 모회사(지분율 100%)인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의 자금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핵심자산을 현금화하는 강수를 뒀다.
◇페루LNG컴퍼니 지분전량 현금화…자산의 30% 차지
SK어스온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고 미국 소재 페루LNG컴퍼니(Peru LNG Company) 지분 20% 전량을 다음달 29일 미드오션에너지(MidOcean Energy)에 3399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페루LNG컴퍼니는 2010년부터 액화천연가스(LNG) 생산플랜트를 가동하고 있으며 SK어스온 외에 미국 헌트오일(Hunt Oil), 영국 쉘(Shell), 일본 마루베니(Marubeni)가 지분을 보유했다. 미드오션에너지는 미국 에너지 투자전문 사모펀드 EIG의 LNG사업 자회사다.
SK어스온은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사업과 E&P(Exploration&Production·석유개발)사업을 물적분할하면서 설립됐다. 배터리사업은 분할해 SK온이, E&P사업은 SK어스온이 됐다. 이후 SK온은 외부 투자유치를 잇따라 받으면서 SK이노베이션 지분율이 지난해 3분기말 기준 89.52%까지 줄었지만 SK어스온에 대해서는 100%를 유지하고 있다.
페루LNG컴퍼니 지분은 규모 측면에서 SK어스온의 핵심자산이다. 분할 때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가져온 자산으로 2022년말 SK어스온 자산총계가 1조1744억원이었는데 이중 페루LNG컴퍼니 지분가치가 3329억원으로 28.4%를 차지했다. 이번 매각가격도 장부금액 수준에서 형성됐다.
SK어스온이 보유한 또다른 투자지분으로는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오만 가스전에 투자하는 KOLNG(Korea LNG) 지분 16%와 카타르 가스전에 투자하는 KORAS(Korea Ras Laffan LNG) 지분 8%가 있다. 하지만 2022년말 기준 SK어스온은 KOLNG 지분가치(장부금액 기준)를 200만원, KORAS 지분가치를 34억원으로 평가하고 있어 자산총계에서의 비중은 미미하다.
다만 이번에 페루LNG컴퍼니 지분을 매각한 것은 수익 측면에서 기여도가 낮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KOLNG는 2021년(분할 이후 기준) 20억원과 2022년 169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KORAS가 지급한 배당금은 2021년 21억원, 2022년 137억원이었다. 석유개발사업 특성상 SK어스온에 이들 관계사가 지급한 배당금은 현금흐름 창출의 동력이 됐다. 반면 페루LNG컴퍼니가 지급한 배당금은 전무하다. 페루LNG컴퍼니는 SK이노베이션 산하에 있을 때도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자산 절반이 현금성자산…CCS사업 확대 포석
SK어스온은 이번 페루LNG컴퍼니 지분 매각으로 현금을 크게 늘리는 효과가 있다. SK어스온은 분할 당시 SK이노베이션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현금 일부에 더해 SK아이이테크놀로지 주식 매각대금 일부와 SK엔무브(옛 SK루브리컨츠) 주식매각 대금 일부를 가져왔다.
여기에 SK이노베이션이 2021년 8월 발행한 합산 2000억원 규모 사모채의 대부분인 1500억원 규모 사모채를 승계하면서 분할 직후인 2021년말 현금성자산이 3341억원으로 애초 비교적 풍부했다. 2022년말에도 2906억원으로 풍부한 수준이 유지됐다.
2022년말 재무제표상 현금및현금성자산(1784억원)과 단기금융상품(1123억원)에 페루LNG컴퍼니 지분 매각대금(3399억원)을 합산해 SK어스온이 확보할 전체 현금성자산을 가늠해보면 6305억원이 나온다. 2022년말 기준 자산총계(1조1744억원)의 53.7%다. 전체 자산의 절반이 현금성자산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SK어스온이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배경에는 신사업인 CCS사업을 확대하려는 이유가 크다. CCS사업은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 이송한 후 땅속의 대염수층이나 고갈된 유전·가스전 등 저장소에 주입하는 사업이다. SK어스온의 핵심사업인 E&P사업에 적용하던 기술과 유사하기 때문에 SK어스온이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의 자금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에 2022년 12월 1조원과 지난해 1월 1조원 등 합산 2조원의 유상증자 자금을 대는 등 이유로 SK어스온에 대한 지원 여력이 부족하다. SK이노베이션이 SK어스온에 제공하고 있는 대여금도 없다. SK어스온으로서는 신사업 확대가 필요한 상황에서 현금 확보를 위해서는 핵심자산 매각이 불가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CCS사업은 이산화탄소 감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유망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SK어스온은 한국석유공사, SK에너지, 삼성중공업, 롯데케미칼 등과 국내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국내 허브에 집결시킨 후 말레이시아로 이송해 저장하는 셰퍼드 CCS 프로젝트(Shepherd CCS Project)에도 참여하고 있다. SK어스온은 2030년까지 200만톤 규모의 저장소를 확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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