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극심한 반도체 불황으로 현금 창출력이 50분의 1로 감소한 SK하이닉스가 지난해와 비교해 설비투자(CAPEX)를 대폭 줄이고 차입을 대거 늘리는 현금 전략을 취했다. 이에 따라 재무건전성은 뒷걸음질쳤다.
다만 내년 업황은 올해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전략은 반대로 CAPEX 확대와 상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지출 1순위' CAPEX, 전년대비 56%로 줄여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누계(연결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325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무려 98%(13조2704억원) 감소했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가장 낮은 현금 창출력을 보였다. 지난 10년 넘게 SK하이닉스 영업현금흐름이 5조원 이하로 떨어진 해는 없었다.
현금 창출력이 크게 떨어진 데는 SK하이닉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누계로 회사는 7조758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실제 현금 유출을 동반하지 않아 현금흐름에는 긍정적인 감가상각비(9조7264억원) 덕분에 그나마 영업현금흐름이 플러스(+)를 나타냈다.
예년보다 현금 유입량이 줄어들자 SK하이닉스는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매년 가장 많은 현금을 지출하는 유형자산 취득의 규모를 줄였다. 유형자산 취득은 곧 CAPEX를 가리킨다. 올해 3분기 누계 CAPEX는 6조5995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6%(8조2735억원) 감소했다. 매년 10조원 이상의 CAPEX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필수 설비투자'만 진행한 셈이다.
◇국·내외서 회사채·CP 발행, 전방위 현금 확보 영업활동에서 3252억원의 현금만 창출한 상황인데 이보다 20배가 넘는 6조5995억원의 CAPEX를 무엇으로 감당했을까. 이런 경우 기업들은 기존에 들고 있던 현금을 사용하거나 자산유동화, 유상증자, 차입 등으로 돈을 마련한다. SK하이닉스의 선택은 차입이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9개월 동안 총 17조7478억원을 차입했다. 전년 동기대비 178%(11조3553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상환 자금으로 활용한 부분(9조4463억원)을 제외해도 8조3015억원의 순차입을 일으켰다. 전년 동기대비 366%(6조5208억원) 늘어났다. 단순 차입 규모로도, 순차입 규모로도 역대 최대다.
구체적으로 공·사모 회사채와 사모 기업어음(CP) 등을 국내외에서 다량으로 발행해 자금을 끌어왔다. 고금리에도 이자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부족한 CAPEX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불가피했다. 올해 현금으로 나간 이자지급액은 9055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90%(5928억원) 늘었다. 이 또한 역대 최대 규모다.
재무안정성 약화도 감수해야 했다. 부채비율은 올해 3분기 말 85%로 전년동기 대비 26%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도 20%에서 31%로 올랐다. 당분간 이자비용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등하는 메모리반도체 가격, 내년 현금창출력 회복 기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위안은 올해 4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반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4분기로 한정해 영업손익 흑자 전환을 예상한다. 더불어 내년 8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예상이 맞을 경우 현금 유출이 없는 감가상각비가 9조원이 넘는 SK하이닉스는 과거와 같은 10조원 이상의 현금 창출력을 회복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영업이익 6조8000억원을 기록한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영업현금흐름은 14조7805억원이었다. 내년에는 이자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폭 늘어난 부채를 감축하고 CAPEX를 늘릴 여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시장 관계자는 "2024년 상반기에는 서버향 수요가 회복되기 시작하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최근 PC와 스마트폰 고객사들로부터 리스톡킹(Re-Stocking, 재고 확보) 수요가 발생하고 있어 가격협상 흐름이 공급자 우위로 돌아서는 등의 긍정적 신호가 포착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