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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vs성장' 기로에 선 제약사

'녹무원' GC녹십자의 변화, 미완성 '북미사업' 성장통

①10년 공들인 북미 프로젝트 전략 수정…성장 한계로 구조조정 불가피

정새임 기자  2023-11-28 16:13:34

편집자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제약사들은 '제네릭·상품유통·리베이트'라는 틀 안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약가규제, 불공정 관행 철퇴 등 과거와는 다른 규제환경에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더해 오너십이 바뀌는 과도기까지 겹치면서 가지각색 '생존전략'이 등장했다. '위기냐 성장이냐'를 놓고 각각 다른 전략을 펼치는 제약사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녹무원(녹십자+공무원)'으로 불릴 정도로 안정적인 조직 문화를 추구하던 GC녹십자. 최근 국내 조직의 10%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전례없던 과감한 쇄신을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매출과 이익이 줄고 현금이 쪼그라들었다는 배경이 눈에 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10년간 신성장 사업으로 추진했던 북미 사업에 대한 성장통이라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예상보다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혀 계획대로 되지 못한 북미 사업의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여있다.

◇10년간 공들인 북미 진출, 인허가 벽에 전략 전면 수정

백신과 혈액제제. GC녹십자를 국내 최대 제약사로 만든 무기다. 제네릭 위주의 다른 제약사들과 확연한 차별점이 있었다. 국내 최초로 독감 백신을 개발하고 유전자재조합 혈우병 치료제를 세계 두 번째로 성공시켰다. GC녹십자의 혈액제제 공정기술은 태국 등으로 '플랜트 수출' 되기도 했다.

국내 제약업계에서의 전무후무한 업적을 토대로 GC녹십자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러 국가로의 진출을 도모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인 건 규모가 가장 큰 북미 시장이었다. 지난 10년은 북미 시장을 목표로 체력을 키우고 몸집을 불리는 과정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입찰 성격이 강한 백신보다 수익성이 높은 혈액제제를 북미 진출에 적극 활용했다. 이 프로젝트는 과감했다. 보통 미국이나 유럽은 현지 인허가를 받기가 까다로워 기설립된 공장을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GC녹십자는 캐나다에 혈액제제 공장을 직접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캐나다 퀘벡 정부기관으로부터 혈액을 공급받아 면역글로불린제제를 현지 생산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북미 현지법인을 세우고 캐나다 퀘벡투자청과 재정지원 및 우선구매협약도 맺었다.

GC녹십자가 캐나다에 설립한 혈액제제 공장과 미국 혈액원 사업. 현재는 모두 해외 기업에 매각한 상태다.

투자금 약 2000억원이 넘는 북미 공장 건설은 GC녹십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으로 꼽혔다. 동시에 회사는 혈액제제 면역글로불린의 미국 시판허가도 계획했다. 글로벌 3상을 마무리하고 허가 절차를 밟았다. 캐나다 공장을 발판삼아 미국 진출 그림까지 완성시킬 계획이었다.

과감함은 예상보다 높은 인허가 허들에서 무너졌다. 의약품 공장의 경우 정부로부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cGMP)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절차에서 몇 번의 지연이 있었다. 코로나19는 북미 진출의 불확실성이 대폭 높아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다. 하늘길이 막혀 본사 인력이 현지 공장을 관리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설상가상 자체 개발한 면역글로불린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는 것도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회사는 2020년 7월 결단을 내렸다. 약 2000억원을 들여 지은 캐나다 공장을 매각하기로 했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재무적 안전성을 끌어올리는 목적이다.

GC녹십자의 공장 매각은 북미 프로젝트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북미 현지 생산과 혈액제제 미국 진출이라는 두 개의 큰 축에서 하나의 축이 사라졌다. 캐나다 공장을 지닌 현지법인 두 곳을 매각하면서 미국의 혈장공급법인도 함께 매각했다. 북미 혈장공급과 생산 전반을 떼어내면서 북미 진출로 실현할 수 있는 기대수익도 대폭 축소됐다.

◇주력사업 내수 한계 도달…북미 확대 지연에 비용절감 불가피

캐나다 공장 매각으로 투자금을 회수했지만 10년간 북미 사업에 투자하며 악화된 재무 안전성을 회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해외 실적이 재무를 뒷받침해야 할 시기에 여전히 투자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GC녹십자가 국내보다 해외 시장을 눈여겨 본 이유는 내수 시장이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백신 시장은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경쟁이 심화하고 있었다. 독점에 가깝다시피했던 GC녹십자의 입장에서는 잃을게 더 많다. 국내 혈액제제 시장은 더 이상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혈액제제는 공장을 짓는 것부터 혈장을 수급하고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비용과 까다로운 공정을 요한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사 수가 적어 진출에 성공하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GC녹십자가 해외에 직접 공장을 짓고 혈액원 사업에 나선 배경이다.

당시 북미로 진출하겠다는 판단은 합리적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사업의 성공을 지나치게 확신한 탓일까. 전방위적인 설비 확장을 단행하면서 수천억원의 투자금이 들었다. GC녹십자는 북미 진출을 시도하면서 캐나다 공장 건설뿐 아니라 국내 혈액제제를 생산하는 오창공장도 두 배가량 증설했다. 1000억원 규모의 설비 투자가 이뤄졌다. 면역글로불린 글로벌 임상을 비롯한 각종 연구개발비에 드는 돈도 매년 1000억원 이상에 달했다.


10년 전 GC녹십자의 재무구조는 부채비율 40%대, 차입금의존도 10% 초반으로 매우 양호했으나 막대한 투자금을 감당하면서 조금씩 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현재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70%, 차입금의존도는 약 30%다. 사업공동체로 평가받는 녹십자홀딩스의 재무 지표도 비슷한 흐름이다. 10년간 부채비율은 38%p 늘고 차입금의존도도 24%p 증가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북미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며 실적을 뒷받침해야 할 시기다. 예상대로 국내 백신과 혈액제제 시장은 확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제조가 어그러지고 혈액제제 미 허가가 지연되며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백신제제의 수출도 이뤄지고 있지만 공공입찰 등의 한계로 퀀텀점프를 이룰 정도의 규모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합성의약품과 일반의약품(OTC)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미약품, 종근당, 대웅제약 등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자체 개량신약과 네트워크로 중무장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작은 기업들도 CSO와 도매를 끼고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한 상황에서 GC녹십자가 끼어들 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OTC에서는 '비맥스'라는 히트제품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GC녹십자는 올해 3분기 누적 별도기준으로 매출 9190억원, 영업이익 31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이 2.4% 줄어들면서 영업이익이 57% 축소됐다. 매출 캐파를 늘리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결과다. 당장 매출 캐파를 늘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꺼내든 게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이었던 셈이다.

GC녹십자 관계자는 "캐나다 혈액제제 공장 건립을 통한 해외 진출이 당시로써는 최적의 판단이었다"며 "글로벌 경기 영향과 미국 혈액제제 사업 진출에 투자하며 차입금이 커졌고 시장 상황에 맞춰 내년도 차환 발행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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