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은 자산 4조원 수준의 방산전문 회사다. 외형만 보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치 않지만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등 현금 규모는 넉넉한 편으로 꼽힌다.
한화그룹에 편입된 8년 전만 해도 한화시스템은 자산이 1조원에 못 미치는 작은 회사였는데 급성장의 동력은 뭘까. 모회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그리고 오너 3세 가족회사인 한화에너지의 지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시스템 주요주주라는 점에서 승계작업에 유리하게 돌아올 수 있는 흐름이다.
◇연이은 합병, 유증…보유현금 8년 새 9배 증가 작년 말 연결기준 한화시스템의 자산총계는 3조9456억원을 기록했다. 한화그룹에서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한화(한화건설 포함)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연결), 한화솔루션(연결), 한화에너지(연결),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여천NCC, 한화토탈에너지스(연결) 등 7개 계열사의 합산 자산총계가 약 68조4000억원이었으니 한화시스템은 5.8%의 비중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한화시스템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종속기업이다.
반면 같은 기간 현금성자산을 보면 한화시스템의 위상이 달라진다. 7개 계열사의 합산 현금성자산은 약 8조4000억원이었는데 한화시스템이 1조2484억원을 기록했다. 그룹 현금의 15%를 한화시스템이 채운 셈이다. 무시하기 힘든 규모다.
한화시스템은 2000년 삼성전자와 프랑스 탈레스사가 합작해서 설립했다. 2015년 삼성그룹과의 ‘빅딜’에 따라 한화그룹으로 넘어왔다. 당시 연매출과 자산총계는 각각 7000억원대, 보유현금은 1000억원대로 그룹에서 존재감이 소소했으나 8년간 현금이 9배 넘게 늘었다.
오너 3세들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S&C를 2018년 8월 흡수합병하면서 ICT 사업을 양도받은 게 전환점이 됐다. 사업결합에 따라 현금 420억원이 한화시스템에 유입됐고 별도 연간 EBITDA(상각전영업이익)도 500억원대에서 2000억원 안팎으로 뛰었다.
이듬해 11월엔 한화시스템이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면서 약 990억원의 자금을 더 확보했다. 또 2019년 연간 운전자본투자 규모가 2000억원 이상 줄어든 덕분에 별도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전년의 3배를 넘는 4087억원으로 뛰었다.
합병으로 유입된 현금과 상장자금, 영업현금흐름 개선이 합쳐지면서 한화시스템의 금고는 빠르게 불어났다. 한화S&C를 품기 전인 2017년 별도 현금성자산은 1290억원에 불과했으나 2019년 6135억원으로 많아졌다.
2021년에는 한 번 더 도약이 있었다. 2021년 6월 유상증자로 1조1535억원의 실탄을 끌어모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약 5000억원, 에이치솔루션(현 한화에너지)이 1385억원을 지원사격했다. 유증 결과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율은 46.73%, 에이치솔루션 지분율은 12.80%가 됐다.
◇한화오션 인수로 5000억 유출…투자확대 기조 에이치솔루션은 지금의 한화에너지다. 앞서 한화시스템이 흡수한 한화S&C 역시 에이치솔루션에서 물적분할됐다. 오너 3세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무 3형제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화에너지는 승계작업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시스템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3형제 입장에서 한화시스템 기업가치가 올라야 대주주인 한화에너지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한화S&C 분할 및 합병, 순차적으로 이어진 한화시스템 유증이 후계구도를 닦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선 대규모 현금유출이 이어지는 중이다. 한화오션 인수에 올해 5월 5000억원을 보태면서 상반기 말 현금성자산은 5306억원으로 줄었다. 11월엔 한화오션의 추가 유상증자에 참여, 2000억원을 더 출자할 예정이고 방산 외에 신사업 투자도 확대하는 추세다.
한화시스템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Urban Air Mobility), 위성 통신, 디지털 플랫폼 등 크게 3가지 신규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9163억원을 썼다. 앞으로도 UAM과 테크핀사업을 중심으로 약 28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예정돼 있다.
다만 대부분이 기술적으로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눈에 잡히는 성과로 돌아오기까진 수년이 걸릴 수 있다. 고성장 분야인 만큼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산부문의 안정적 뒷받침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화시스템은 2016년 이후 'KF-21' 전투기 관련 AESA(능동형위상배열) 레이다 및 체계개발 등 연 1조원 이상을 수주하고 있다. 2021년에는 2021년에는 천궁II 다기능레이다 수출(약 1조3000억원) 등 3조원 정도를 수주했고 지난해도 1조7000억원 규모를 주문 받았다. 한화시스템 방산부문 수주잔고는 2019년 3조8748억원에서 올 6월 말 5조4566억원으로 확대됐다. 방산부문 매출의 3.3배에 해당하는 규모로 약 3년치 먹거리를 확보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