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WCP, LG화학 등 분리막 3사 중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기업은 SKIET다. 2020년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 분리막에 편중된 매출을 다변화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폴더블폰 시장이 개화하지 않아 수년째 사업이 답보 상태다.
LG화학과 WCP는 이차전지 외에 분리막 사용처를 넓히고 있다. LG화학은 수처리 분야에서 가능성이 보이자 공격적으로 설비 증설에 나서고 목표 매출도 상향했다. WCP도 이 분야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소재 시장 진출한 SKIET, 성과는 아직
SKIET는 분리막 사업 이외 먹거리 발굴을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SKIET가 낙점한 신사업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소재다. 폴더블폰, 롤러블TV, 곡면 모니터 등 화면을 접거나 둘둘 말고 휘게 하는 디스플레이 표면에 부착되는 소재다. 스마트폰 화면보호 필름과 유사한 형태의 투명 폴리이미드(PI) 필름에 하드코팅을 해 내구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2013년부터 기초 원료 합성, 투명 PI필름 제조, 하드코팅 등의 부문에서 기술력을 쌓아왔다. 2016년 3월 SK종합화학(현 SK지오센트릭)과 각각 진행하던 투명PI 필름 개발 프로젝트와 하드코팅 연구과제를 통합해 SK종합화학 소속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TF는 2018년 3월 SK이노베이션으로 이관됐다.
SKIET는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분사한 이후인 2020년에 별도 브랜드 FCW(Flexible Cover Window)를 만들고 충북 증평 공장에서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당시 SKIET는 2018년에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을 선보인 중국 로욜과 FCW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SKIET의 기대와 달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시장의 성장은 지지부진했다. 이는 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올해 상반기 기준 SKIET의 FCW 매출은 2억원이다. 전체 매출의 0.07%에 불과했다. 이는 내수에서만 거둔 매출이다. 로욜과 계약한 이후 해외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SKIET는 당분간 신사업보다는 분리막 사업에 더 힘을 실을 예정이다.
SKIET 측은 "향후 (FCW) 시장 개화 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제품 개발 전 영역에 걸쳐 핵심 기술은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리막 활용처 넓히는 LG화학·WCP
이와 달리 LG화학과 WCP는 분리막의 활용처를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략은 그간 쌓아온 분리막 기술력을 다른 분야에 응용하는 것이다.
LG화학은 그간 이차전지 연구를 통해 분리막 기술을 쌓으면서 다른 분야에 분리막을 접목하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분리막은 막 내 기공 크기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그 결과물이 RO필터다. 이는 가정용·산업용 수처리 소재다. 높은 압력을 통해 물 분자만 반투막이 통과시켜 물을 정화한다. 해수담수화와 공업용수 정화, 하·폐수 재이용, 정수기 필터 등에 사용된다.
LG화학은 2010년 LG화학기술연구원 CRD연구소에서 WTM 프로젝트팀을 출범해 RO필터를 처음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업 진출을 본격화한 건 2014년 4월이다. 당시 LG화학은 미국 RO필터 기술 스타트업 '나노H2O'를 인수했다. LG화학은 이듬해 400억원을 들여 청주 RO필터 생산공장을 완공해 본격적인 양산에 나섰다.
LG화학은 RO필터 사업을 키우기 위해 지난달부터 청주 공장 증설을 시작했다. 향후 2년간 투입할 지본적지출(CAPEX)는 1246억원이다. LG화학은 현재 연 2000억원 규모인 RO필터 매출을 5년 내 두 배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WCP는 △수처리 △화학공정 △가스분리 △식음료 △섬유 부문에서 활용할 분리막을 개발하고 있다. WCP는 각 아이템에 맞는 분리막의 기초기술을 조사해 이온교환막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 개발에 이어 사업성이 검증되면 별도 신규 공장을 설립해 해당 분리막을 상용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SKIET는 이차전지용 분리막 외에 다른 응용분야 진출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 개발 중인 나노 복합소재 분리막을 기반으로 수처리 분리막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노 복합소재 분리막은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 수준의 물질까지 걸러내는 고성능 분리막을 말한다. 정수 처리 능력이 기존 분리막 대비 높고 대용량이 물처리도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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