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투자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올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 주식으로 조(兆) 단위 자금을 조달한 이후 RO필터 공장 증설, 차세대 바이오 오일(HVO) 공장 및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공장 신설 등 회사의 미래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 양극재 공장 건설 등 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 이슈는 아직 남아있지만 유동성 확보를 위해 비핵심자산 정리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이 중심엔 벌써 4년째 LG화학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차동석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자리 잡고 있단 평가다.
◇RO필터부터 LFP 양극재까지…주목받는 '연쇄 투자' LG화학은 24일 중국 화유그룹과 손잡고 LFP 양극재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모로코에 북미 지역에 공급할 LFP 양극재 생산 합작 공장을 짓는 게 골자다. 이 공장은 연산 5만톤(t) 규모로 지어지며 양산 목표 시점은 현재 2026년이다.
구체적인 투자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양극재 1만t당 시설 투자비가 1000억원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LFP 양극재 공장 설립에도 수천억원의 투자가 예상된다. LG화학은 모로코에서 화유그룹 내 화유코발트와 리튬 컨버전 플랜트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신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달부터 LG화학은 충북 청주 RO필터 공장 증설 투자를 시작했다. RO필터는 가정용·산업용 수처리 소재로 첨단소재 부문의 한 축이다. 2025년까지 약 1246억원의 규모로 투자가 진행된다.
이달 중순엔 수소화식물성오일(HVO) 합작 공장 설립 계획을 밝혔다. HVO는 식물성 원료에 수소를 첨가해 만든 차세대 바이오 오일이다. 이탈리아 에너지 기업 에니(ENI)그룹과 손 잡고 오는 2026년까지 연 30만t 규모의 HVO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불과 한 달 새 '연쇄적인 투자 발표'가 나오고 있다. 현재 회사는 고객사들과 2030년 양극재 생산능력(CAPA)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추후 새 증설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또 친환경 인증 제품 생산을 위한 원료 내재화 작업도 다음 투자처로 지목된다.
이차전지 소재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선 가장 빨리 LFP 양극재 시설 투자를 발표한 것"이라며 "LFP 양극재에 망간을 추가한 LFMP 양극재 등 차세대 전지 소재 사업을 키우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역시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적기 잡나…돋보이는 CFO의 판단 단연 '선제 조달' 덕분이다. 이 회사는 지난 7월에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57%를 담보로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규모의 외화 교환사채(EB) 발행한다고 밝혔다.
재무 부담에 대한 우려를 겨냥한 행보였다. 올 6월까지 LG화학은 신사업 확장의 여파로 차입금이 역대 최대인 19조원을 넘어선 상태였다. 이에 반해 석유화학 부문은 업황 침체로 2분기에 영업손실 127억원을 기록하며 '캐시카우'로서의 역할을 못했다.
다만 EB 발행으로 20억달러가 운영 자금으로 유입되면서 영업현금흐름을 웃도는 투자부담에도 숨통이 터졌단 평가가 나왔다. 그리고 일련의 연쇄적인 투자 발표로까지 이어지면서 CFO인 차동석 사장의 과감한 자금 조달 선택이 돋보이게 된 상황이다.
차 사장의 노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주력 자회사를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6월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진단사업부를 약 1500억원에 판 데 이어 현재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생산하는 청주·오창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다.
돈 들어갈 곳이 여전히 많다. 미 테네시주 양극재 공장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전구체 생산 공장 등이 대표적인 투자처다. 이에 시장은 석유화학 핵심 설비인 여수공장 NCC(나프타분해시설) 2공장 등이 정리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황이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첨단소재 사업의 수익성 악화까지 겹쳐 현재로선 '비핵심자산 매각'이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을 뒷받침할 유일한 곳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