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주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투자 규모가 작은 소액주주를 소위 '개미'로 불렀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들은 기업 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업공개(IR), 배당 강화, 자사주 활용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에 힘주고 있다. 더벨이 기업의 주주 친화력(friendship)을 분석해봤다.
국내 정유업계 중 에쓰오일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기업으로 꼽힌다. 1976년 설립 이후 2차례에 걸쳐 최대주주가 변경되며 사명이 한국·이란석유주식회사, 쌍용정유 등으로 바뀌긴 했으나 사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건 꾸준히 정유(80%)였다.
30여년 동안 최대주주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 AOC(Aramco Overseas Company)를 배경 삼아 안정적으로 원유를 들여와 공고한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안정적인 사업기반은 꾸준히 배당을 할 수 있었던 밑바탕으로 작용하며 에쓰오일을 국내 대표 고배당 정유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5년 사이 석유화학 사업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며 배당성향은 점차 낮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가 제시한 배당 가이드라인은 지켰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로 수익성 제고에도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다.
◇미배당 사례 2차례, 배당성향은 50%→30%
에쓰오일이 대표적인 배당주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동안 꾸준히 멈추지 않고 배당을 진행한 덕분이다. 일부 변동이 있긴 했으나 AOC가 지분투자한 1991년 이후 에쓰오일은 50%선을 오가는 수준의 배당성향을 잘 지켜왔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졌다. 2008년에는 당기순이익이 4734억원에 불과했음에도 주당 5000원 수준의 현금배당을 결정하며 배당성향이 100%를 넘어서기도 했다. 당시 에쓰오일의 현금배당 총액은 5822억원으로 배당성향 123%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에쓰오일의 배당정책에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석유화학 사업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1단계 투자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투자 부담이 늘었고 특히 2014년 사상 최악의 국제유가 급락으로 34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사실상 무배당을 결정했다.
사실상 무배당이라 표현한 이유는 상반기 주당 150원 수준의 중간배당으로 총 175억원의 배당을 진행했지만 하반기 적자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며 2014년도 기준 결산배당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최소 주당 1000원 이상의 현금배당을 실시한 것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다. 그해 에쓰오일은 연결 당기순손실 2878억원을 기록했다.
정유업의 한계를 여실히 깨달은 듯 에쓰오일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석유화학 단지 조성을 위한 투자를 단행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해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ODC)를 구축하며 정유사에서 종합 화학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다만 대규모 투자 부담으로 흑자전환 이후에도 배당규모를 줄여야 했다. 2016년 주당 현금배당 6200원(배당총액 7219억원), 배당성향 59.9%를 끝으로 최근 5년 사이 30% 수준의 배당성향을 유지했다. 이 사이 또 한번의 적자(당기순손실 7961억원)를 낸 2020년에는 우선주에만 주당 25원 수준의 현금배당을 진행해 에쓰오일은 총 2차례의 무배당 기록을 갖게 됐다.
◇9조 투입 샤힌 착수, 배당 가이드 준수 열쇠는 하반기 업황
에쓰오일의 배당정책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1단계 프로젝트보다 4조원이나 많은 금액을 투입하는 2단계 투자, 샤힌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했기 때문이다. 320만톤에 달하는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하는 샤힌프로젝트는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투자(9조3000억원)로 평가받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에쓰오일은 보수적 관점에서 배당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이다. 2019년 12월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의 30%라는 가이드라인(2개년 단위)을 제시한 에쓰오일은 이후 적자를 낸 2020년을 제외하고 해당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했다.
올해의 경우 투자 부담 등으로 배당성향 가이드라인을 20% 수준까지 낮췄다. 그동안 적자를 내지 않는 한 가이드라인을 지켜온 에쓰오일의 행적을 봤을 때 올해 역시 가이드라인 이행을 기대해 볼 만하다.
다만 가이드라인 준수를 위한 선결조건을 꼽으라면 단연 정유업황 회복을 들 수 있다. 지난 1년 사이 글로벌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며 에쓰오일의 수익성은 80% 이상 깎인 상태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1.9% 감소한 5521억원이었으며 배당의 기준이 되는 당기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87.1% 줄어든 2429억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주당 200원(배당총액 233억원) 수준의 중간배당을 결정해 상반기 기준 배당성향은 9.6%였다.
최근 아시아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제품가-원가)이 회복세를 보이며 6개월 만에 10달러를 넘어선 것은 호재로 여겨진다. 통상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이달 첫주 정제마진이 배럴당 11.5달러를 기록해 1월 넷째주(13.5달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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