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무적으로 가장 바빴던 곳을 뽑으라면 단연 SK이노베이션이다. 반 년만에 8조원 넘는 현금을 끌어모았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대목이지만 한 편으로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배터리 사업의 본진인 SK온의 사업성이 인정 받았다는 점이다. 사실 SK온의 자금 조달 프로젝트는 작년 이전부터도 계속됐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성장 산업에 대한 투심이 악화했다. 프리IPO 과정에서 녹록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시장 상황이 올해 조금은 풀렸지만 여전히 저금리 시대에 비하면 투심이 회복됐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SK온은 반 년만에 IPO에 버금가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국내에서도 배터리 후발주자임에도 시장의 인정을 받은 셈이다.
모회사와 자회사 재무 라인간의 '콜라보'가 있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 하다. SK이노베이션 재무 라인은 FI를, SK온 재무 라인은 외화채 조달과 미국 현지 보조금 정책 등에 승부를 걸었다. 양 사 재무 라인의 역할 분담이 적절했고 분업의 결과가 훌륭했다.
한 편으로는 향후 청구될 계산서가 걱정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자본확충이었다면 SK온의 자금조달은 부채성 조달이라는 특성이 짙다. 8조원 가까운 자금은 향후 상환 이슈가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SK온과 SK이노베이션 재무 라인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진짜 혁신이 기대되는 배경이다. SK이노베이션은 추후 투자 재원 확보와 잉여자금 확충을 위해 비핵심자산 매각을 내걸었다.
SK이노베이션의 모토는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이다. 기존 탄소 기반 사업에서 친환경 그린 사업으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다. 대충 어떤 자산을 매각해 어떤 자산에 투자할 지 그림이 그려진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에너지를 비롯해 SK지오센트릭, SK루브리컨츠 등 초대형 정유·화학사를 보유하고 있다. 자회사 SK루브리컨츠는 수 차례 IPO 등을 추진했다가 일부 지분 매각에 나섰던 바 있다.
SK온이 후발주자 딱지를 떼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투자가 필요하다. SK이노베이션이 어떤 결단을 내려 SK온의 뒷받침을 해줄 지 궁금하다. 5년 뒤, 10년 뒤 SK이노베이션은 어떻게 '이노베이션'(혁신)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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