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그룹에서 9번째 상장사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가 기업공개(IPO)에 본격 착수했다. 조선업이 오랜 만에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선박의 AS를 담당하는 HD현대글로벌서비스 몸값을 높게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예상 몸값은 2조~3조원이다.
이번 IPO는 예견된 수순이다. 앞서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21년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약 6500억원을 투자받으며 1조72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늦어도 2027년까지 IPO를 성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공모 구조에도 관심이 모인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62%를 보유한 HD현대다. 현재 100% 신주 발행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장의 자금 유입보다 꾸준한 배당 수익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낫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기선 사장, 여전히 총괄사장으로 경영…IPO 데뷔전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기선 회사'로도 통한다. 정기선 사장이 설립 때부터 직접 챙겼고 한때 대표이사도 맡았으며 현재도 회사 경영에 총괄사장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정 사장은 현재 그룹 지주사인 HD현대와 조선부문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여기에 더해 2개 회사에선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데 바로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글로벌서비스다.
특히 정 사장은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설립을 주도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이사에도 올라 회사를 이끌기도 했다. 지금은 대표이사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경영지원부문 총괄사장으로서 이기동 대표이사와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이번 IPO가 정 사장이 지휘하는 첫 번째 IPO인 셈이다. 오너 일가가 회사 사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로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HD현대그룹이 '지금' IPO에 착수한 이유는 증시와 조선업 모두 호황을 맞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조선업은 10년 가까이 이어진 긴 터널을 벗어나 올해 슈퍼 싸이클을 맞았다. 주요 조선사 주가가 모두 올랐는데 하반기 역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선박 AS 사업을 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 역시 앞으로 선박 수주 증가에 따른 수혜를 고스란히 누릴 가능성이 높다.
IPO 시장에서도 반색하고 있다. 지난해 초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초대형 IPO가 사라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도 변경에 따라 대어들에게 우호적 환경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도 변경으로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손실률은 기존 최대 -37%에서 -40%로 커졌고 수익률은 160%에서 300%로 2배 가까이 확대됐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 실적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매출이 2403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1조3338억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564억원에서 1420억원을 증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0.6%로 두 자릿수를 보였다.
◇공모 구조에 쏠리는 시선 그룹 지주사인 HD현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인 만큼 이번 IPO가 정기선 사장의 지분 승계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현재 HD현대그룹은 구주 매출 없이 100% 신주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구주 매출을 통한 당장의 지분평가 이득과 미래 배당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의 규모 등을 두루 고려해 최종 공모 구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는 HD현대오일뱅크와 HD현대글로벌서비스에서 나오는 배당이 전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2020~2021년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오일뱅크보다 더 많은 배당 수익을 지주사에 안겼다. 2021년 HD현대가 거둔 배당 수익(2453억원) 가운데 현대글로벌서비스에서 들어온 금액이 1748억원으로 현대오일뱅크의 705억원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구주 매출을 확대하면 단기적으로는 많은 자금이 유입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배당 수익은 줄게 된다. HD현대는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 등을 통해 오너 일가를 비롯한 주주에게 배당을 지급한다.
정 사장의 최대 자금원이 HD현대에서 나오는 배당인 만큼 이번 IPO와 정 사장의 승계 재원 마련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HD현대는 2018년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모두 1조5198억원을 배당했는데 이 가운데 5%에 해당하는 760억원 정도가 정 사장에게 배당됐다.
정 사장은 몇 년 사이 경영 보폭을 키우고는 있지만 지분 승계는 갈 길이 멀다. HD현대 지분율을 살펴보면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26.6%를, 정기선 사장이 5.26%를 보유하고 있다.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주식의 시장가치는 26일 종가 기준 1조2528억원 수준에 이른다. 이를 물려받으려면 최고 세율 60%를 적용했을 때 세금만 7500억원가량을 내야한다.
그러나 정 사장은 다른 주요 그룹의 후계자와 달리 재원 마련에 활용할 만한 개인회사가 없다. HD현대 지분을 제외하면 HD한국조선해양 주식 544주, HD현대일렉트릭 주식 156주, HD현대건설기계 주식 152주를 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