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내년 조달시장이 올해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선 유동성 확보가 급선무인 시점이다. 특히 지금같은 자금 경색기에는 매출에서 20% 정도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는 '쿠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벨은 '위기의 시대, CFO의 제1역할은 '현금 확보'라는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신용등급 관리, 대안적 자금조달 방안 등에 대해 시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비핵심사업 매각과 물적분할, 크레딧펀드 이용 등이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언급됐다.
27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개최한 '2023 더벨 CFO 포럼'에는 각 기업 CFO와 재무담당 실무자를 포함해 100여명이 참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으며 3개 세션 발표를 마친 이후 Q&A(질의응답) 시간이 약 40분간 이어졌다.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이 질문을 맡았고 김은기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채권팀 크레딧 수석연구위원과 권용현 신한투자증권 GIB그룹 기업금융1본부장(상무), 김원재 모간스탠리 한국 기업금융부문장이 답변했다.
Q. 강연에서 순차입금/EBITDA 비율, EBITDA/금융비용 등의 수치가 신용등급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산업의 특성상 특별히 높거나 낮게 나오는 업종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해달라.
A. 김은기 수석연구위원 = 기업을 평가할 때 순차입금/EBITDA를 중요하게 보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고 표준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산업별로 차별화되는 양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일반 기업별로도 개별 기업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재무적 융통성, 그룹 계열사 여부 등이 크게 작용한다.
또 영업현금흐름 변동성이 큰 기업 또는 산업분야에 대해서는 재무비율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서 보고,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선 완화시켜서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이나 바이오처럼 연구개발(R&D)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업종에 대해선 (신용평가시) 매우 엄격하게 재무비율을 요구한다. 반대로 그룹 내부에서 수직 계열화 등으로 사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비율을 완화시켜서 보는 방식이다. 즉 정성적 부분이 많이 작용할 때는 정량적 점수 비중을 낮춰서 참고한다.
Q. 자금 조달방법으로 비핵심사업 매각을 제안했다. 그런데 매각해야 할 비핵심사업이 맞는지 자체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판단 기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
A. 김원재 부문장 = 비핵심사업의 정의를 조금 넓게 가져갈 수 있다. 주력사업이 아니라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미미한 사업, 그래서 매각하더라도 핵심사업에 부정적 영향 또는 특별한 연계성이 없는 사업이라고 하겠다.
SKC 사례처럼 비핵심사업이 아니라 주력사업을 선제적으로 재편하는 방안도 있다. 주력사업의 경쟁력이 해당 산업 섹터 내에서 약화 중이거거나 산업 전망 자체가 긍정적이지 않은 경우 매각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경우는 새로운 사업을 확실히 결정한 후에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Q. 가치가 낮아 매각되는 비핵심사업이라면 투자자 입장에서도 매력이 없을 수 있다는 의문이 든다. 매각할 경우 적정 할인율 또는 적정가격 산정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A. 김원재 부문장 = 전략적 투자자 관점으로 보면, 어느 기업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업도 다른 기업으로선 핵심사업을 키우기 위해 중요한 키가 될 수 있다. 또 현금흐름이 안정적으로 창출되는 기업이라면 충분히 투자할 니즈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몸값에 어느정도 할인율을 적용해야 하는가의 부분은 인수자가 누구고, 이들이 매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 비핵심사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대가치보다 헐값에 팔릴 것이란 부분은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Q. 최근 M&A는 인수 또는 매각 주체가 사모펀드(PEF)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경영간섭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김원재 부문장 = (경영권 지분이 아닌) 소수지분 매각을 고려해볼 수 있다. 소수지분 매각의 경우에도 경영 관여를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지만 관여도가 훨씬 낮다. 다만 일정 부분의 관여는 향후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Q. 앞서 자금조달 수단과 관련해 물적분할 사례를 소개했다. 다만 현재 물적분할 이후 기업공개(IPO)를 하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크게 확대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물적분할과 IPO가 기업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인가.
A. 권용현 본부장 = 결과론적 관점으로 보면 (LG화학에서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는다. LG에너지솔루션 지분 80%를 가지고 있는 LG화학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자금 소요를 홀로 감내하기에는 재무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는 상황이었다.
물론 내부 의사결정에 있어선 기존 주주와 채권자의 입장 등을 종합적으로 선행되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자산 유동화 차원에서의 물적분할 상장은 주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시장에서 상당히 유용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Q. 강연에서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달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는데, 내년 활용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금조달 수단이 있는가.
A. 권용현 본부장 = 내년 상황을 예측하려면 금리와 거시경제 환경, 상반기 이후 기업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기점으로 대규모 유상증자가 계속 추진되고 있다. 최근 CJ CGV, SK이노베이션 등도 마찬가지로 유증을 결정했다. 물론 이 두 회사의 경우 부채(Cost of debt)가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자기자본(Cost of equity) 비중을 늘려서 균형점에 도달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최근 유증 건수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로 금리에 대한 불안이 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발언 등은 금리 조기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연내 자금 소요가 필요한 기업들로선 금리 전망이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주식시장은 예상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으니 유증을 선택하는 부분이 있다.
또 현재 지분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투자 검토를 하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할 기회로 기업들이 유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Q. 대기업과 비교해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투기등급 기업들은 자금조달이 훨씬 어려운 특징이 있다. 레고렌드 사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보면 신용 위기라기 보다는 유동성 위기의 성격에 가까운데, 향후 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유지된다면 결국 신용 위기를 통한 자금 경색기가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투기등급 기업들은 어떤 자금조달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가.
A. 김은기 수석연구위원 = 시장 상황이 안좋을수록 투자자들이 우량기업에 쏠리는 양극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정부가 지난해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대책을 지원했고 현재 35조원 정도 여력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안정화 방안도 기존 6월 말에도 올 연말까지로 연장됐다. 이 같은 안정화 방안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A. 권용현 본부장 = 교과서적으로 접근했을 때 매출에서 약 3~5%를 기업에 필요한 현금이라고 본다면, 자금 경색 하에서는 15~20% 정도의 '캐시 쿠션'을 들고가는 편이 자금 담당자 입장에서 안심할 수 있는 길이다. 자금 운용 측면에서 상당히 보수적이고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조달 창구와 관련해서는 기업의 생애주기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스타트업 시점에서 초창기 추가적인 자금 조달을 원하는 경우 정책자금, 또는 스타트업 펀드를 통한 외부 파이낸싱을 이용할 수 있고 쇄락기에 있는 기업이라면 자산 유동화를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A. 김원재 부문장 = 최근 크레딧펀드(Credit Fund)라는 대출 펀드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에게 기존 은행차입, 시장성 조달 등 전통적인 조달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Q. 자금경색기에 정부가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해야할 역할이 있다면.
A. 김원재 부문장 = 대기업이 아닌 중소, 중견기업들은 자본시장을 통한 조달방안을 찾기가 녹록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의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보증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가은 국책은행들이 보증을 해주는 형식으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신용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