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은 '왜' 6000억 포기했나

사모 전환사채 통한 대주주 지배력 확대, 당국 규제 사정권 포함

양도웅 기자  2023-04-28 14:49:18
에코프로그룹 지주사인 에코프로가 2021년 7월 발행한 사모 전환사채(20회차)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해 만기 전 취득했다. 곧 소각도 진행한다. 사채 전환가액은 두 번의 하향 조정을 거쳐 6만1400원이다. 전환가능 주식 수는 97만7199주가 됐다.

에코프로는 사채를 발행일로부터 1년 되는 날 시작해 3년 되는 날까지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 제3자가 될 수 있는 자는 에코프로 최대주주 혹은 특수관계인이다. 에코프로 최대주주는 현재 이동채 회장(사진)이다. 특수관계인으로는 자녀인 승환, 연수 씨 등이 있다.

에코프로가 사채를 취득한 27일 회사 종가는 70만7000원이다. 전환가액과 차액은 64만원이 넘는다. 전환가능 주식 수를 곱하면 6000억원이 넘는 규모다. 일각에서 관례대로 사채를 양도받을 수 있는 이 회장이 6000억원을 포기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회장과 에코프로가 대외적으로 밝힌 이유는 '주주가치 보호'다. 에코프로와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 등은 현재 주식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종목이다. 올해에만 에코프로 주가는 600%,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190% 넘게 올랐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가 에코프로비엠, 2위가 에코프로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기업가치가 향상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주식 97만7199주가 발행돼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결정은 적절하지 않다고 에코프로와 이 회장 모두 판단한 셈이다. 전환사채 보유자가 주식 전환을 결정하면 회사는 신주를 발행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이 회장을 포함한 오너가의 에코프로에 대한 지배력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4%에 가까운 지분(97만7199주를 신주로 받았다고 가정할 경우)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현재 이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에코프로 지분은 총합 26.77%다. 이 회장 지분은 19.29%다.

더욱이 지난해 말 에코프로비엠 상무로 승진한 아들 승환 씨와 딸 연수 씨 등으로 경영권 승계 방식과 시점도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1959년생인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기도 하다. 두 자녀의 에코프로 지분은 각각 0.15%, 0.12%다. 두 자녀가 최대주주인 이룸티엔씨가 보유한 에코프로 지분도 5.5%로 많지 않다.

(기준일=2022년 12월 말)

오너가의 지배력 강화와 유지를 위해선 지분 4%도 소중한 셈이다. 그런데도 이 회장이 사채 인수를 포기한 건 에코프로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규제 사정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채 인수 포기를 밝히기 불과 이틀 전인 25일 에코프로그룹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특수관계인에 부당이익제공 금지'라는 행태 규제를 받는다. 가령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부동산·유가증권·상품 등 자산을 상당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제공하는 행위를 부당 내부거래로 보고 제한한다.

에코프로가 시가의 10분의 1수준인 전환가액의 사채를 최대주주인 이 회장에게 양도하는 게 오너가의 지배력 확대를 지원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시장과 당국의 시선이 에코프로에 모아지는 때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회사의 전환사채를 양도받아 주식으로 전환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방식에 대해선 정치권에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출처=국민참여입법센터)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5월 콜옵션이 붙은 사모 전환사채 발행을 통한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자법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해당 법률안은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당시 법안을 발의하며 이 의원은 "제3자 지정 콜옵션부 전환사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막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 에코프로가 사모 전환사채를 이 회장에게 양도하도록 했다면 바로 이 법안이 지적하는 사례에 해당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과 에코프로는 기존 주주와 규제 당국, 정치권으로부터 눈총을 받을 수 있는 결정을 굳이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에코프로 측은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사채 취득 후 이사회를 통해 본 사채의 소각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