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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 평가손익 해부

'1.7조 평가손실' 한화손보, 자본건전성 이슈는

③채권 재분류 불가, IFRS9 선제 도입…자본잠식 해소돼도 금리 민감도 여전

고진영 기자  2023-03-31 08:13:16

편집자주

주식과 채권의 가치는 대개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 변동에 따라 돈이 움직이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은 두 자산이 동시에 급락한 이례적인 해였다. 유가증권의 위기는 기업들이 가진 금융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미국 SVB 사태가 유가증권자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 준 대표적 사례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공정가치는 얼마나 등락했으며 재무제표에는 어떻게 인식됐을까.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는 미실현 손익까지 THE CFO가 분석해본다.
한화손해보험은 지난해 금융자산 평가손실이 비교적 크게 나타난 보험사로 꼽힌다. 자본 여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시가평가를 받는 채권은 많았던 특성 때문이다. 3년 전 평가이익을 보려고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옮겨놨기 때문에 재분류를 통해 가치평가를 피할 수도 없었다.

조단위 평가손실은 자본잠식을 불러왔다. 올해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이 적용되면서 자본잠식 우려는 다시 가라앉았지만 금리에 민감한 한화손해보험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시가평가 피해갈 수 없던 사정

한화손해보험을 포함한 일부 보험사들은 의무화 시점보다 빠르게 금융상품기준서(IFRS9)를 도입한 상태다. IFRS9의 핵심은 채권을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업목적, 계약상 현금흐름 등을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점이다.

기존 IAS39 기준과 달리 재분류나 임의분류도 어렵다. 따라서 매도가능증권 중 계약상 현금흐름 특성평가(SPPI test)를 통과하지 못한 자산은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바뀌어 손익상 민감도가 커질 수 있다.

또 시가평가를 받지 않던 만기보유금융자산 역시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분류돼서 평가손익을 자본에 반영하게 된다. IFRS9는 2018년부터 시행됐으나 보험사들은 IFRS17이 적용되기 전인 작년까지 적용을 면제받았다.


한화손해보험의 경우 2022년부터 IFRS9 적용을 시작했다. 매도가능금융자산을 만기보유금융자산으로 재분류하는 보험사들이 유독 많았던 시기다. 고금리로 채권 가치가 떨어진 만큼 시가평가를 최대한 안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화손해보험은 시가평가 자산이 늘어나는 IFRS9 적용을 되려 앞당겼다.

이유가 뭘까. 한화손해보험은 IFRS9 적용으로 특별히 손해볼 부분이 없었다. 2020년 이미 4조원 규모의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전부 넘겼기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던 당시로선 채권평가이익을 보기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한 번 재분류를 하고 나면 3년 동안은 다시 분류를 바꿀 수 없다. 금리가 치솟은 지난해도 한화손해보험은 재분류를 통한 평가손실 통제가 어차피 불가능했던 셈이다.

IFRS9 적용에 따른 순이익 변동도 사실상 없었다. 이 기준을 조기 도입한 보험사들에겐 '당기손익조정접근법(Overlay Approach)'이 허용돼서다. IFRS9의 첫 적용으로 발생한 추가적 손익 변동을 당기손익이 아니라 기타포괄손익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한화손해보험의 케이스를 보면 IFRS9 적용 이후 별도 재무상태표상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약 7조5000억원, 당기손익조정접근법의 적용을 받는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약 4조원이 잡혔다.

그리고 당기손익-공정가치평가금융자산 관련 손실 중 약 790억원은 당기손익조정접근법을 통해 순손익이 아닌 기타포괄손익에서의 손실로 인식됐다. 법인세 효과 등을 거쳐 실제 자본에서 감산된 금액은 약 600억원이다. 기타포괄손익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순이익이 줄어들진 않았다.


◇자본잠식 불러온 평가손실…자본성증권 7000억 상환 부담

당기손익인식자산에서 생긴 자본 감소가 크지 않았던 것과 달리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평가손실은 1조7478억원에 달했다. 2021년 말 자기자본이 1조4800억원 정도였는데 이를 넘어서는 손실 규모다. 결국 지난해 자기자본은 2482억원으로 급감했고 자본잠식이 불가피했다.

자본잠식률 역시 65.4%로 높은 수준이다. 다만 마이너스까진 가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말 이미 7000억원을 넘는 자본이 평가손실로 깎여나가면서 자본확충에 열중해왔기 때문이다. 작년 1분기 기준 한화손해보험의 자본금은 5800억원, 자기자본은 8400억원으로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RBC비율(지급여력비율) 역시 금융당국 권고기준(150%) 밑인 122.8%로 떨어졌다.

자본잠식 가능성을 예감한 한화손해보험은 작년 3월 2500억원의 후순위채를 찍고 5~9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235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보험업법상 증권발행액이 직전 분기말 자기자본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추가 발행은 여의치 않았다. 그러자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생명으로부터 1900억원을 지원받았다. 한화손해보험이 완전자본잠식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다행히 올해 IFRS17이 도입되면서 한화손해보험의 자본잠식 이슈는 일단락됐다.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면 관리종목에 편입되지만 한화손해보험은 지난달 자본잠식 해소 입증자료를 제출했다. IFRS17을 적용할 경우 한화손해보험의 자본총계는 연결 기준 2675억원에서 3조1700억원으로 훌쩍 늘어난다.

한화손해보험은 "자본잠식이 발생한 이유는 자산만 시가평가되는 평가방식 때문이며 새로운 회계기준에서는 부채도 시가평가 되기 때문에 회계적 차이가 해소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화손해보험이 금리변동에 민감하다는 문제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한화손해보험의 듀레이션갭은 2021년 말 -1.5에서 작년 9월 말 -4.4로 확대됐다. 마이너스 값은 자산보다 부채 듀레이션이 더 길다는 것을 뜻한다. 2021년 말 업계 평균이 -0.5였는데 한화손해보험은 훨씬 갭이 크다. 추후 금리가 내리면 부채 규모가 다른 보험사들보다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갚아야하는 자본성증권이 7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점도 자본적정성 측면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손해보험의 자본성증권 잔액은 후순위채 7280억원, 신종자본증권 4250억원 등 1조1530억원이다. 이중 후순위채 1280억원은 올해 6월 만기가 끝난다. 또 신종자본증권 1900억원은 올 7월에, 후순위채 3500억원 올 11월에 콜옵션 행사시기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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