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한화는 일반기업 최초로 발행에 성공한 한국형 녹색채권(K그린본드)으로 '친환경'에 대한 진정성을 입증했다. 한화가 지주사(사업형)인 덕에 그룹전체 이미지 제고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작점은 지난해 말 부임한 최고재무책임자(CFO) 김우석 부사장에게 있었다. 적극적인 지주사 역할을 모토로 삼았다. 태양광으로 친환경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계열사는 한화솔루션이지만, 지주사가 먼저 정부인증(K택소노미) 기회를 포착해 도전했고, 또 성과를 냈다.
김 부사장이 한화 CFO로 부임한 것은 그룹 정기인사가 이뤄진 2022년 11월이다. 당시는 한화그룹이 한참 지배구조를 손질하고 있을 때다. 한화는 방산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넘기는 대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산하에 있던 한화정밀기계를 가져왔다. 화약·무역·방산·기계 등이었던 기존 사업방향을 에너지와 소재, 장비, 인프라로 틀어 집중하기로 한 결과다.
한화도 친환경 사업 확대를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산하 모멘텀부문(산업기계)이 자회사 한화솔루션과 사업적으로 긴밀하기에 가능했다. 한화솔루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총 3조2000억원을 들여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솔라허브)를 건설하고 있다.
모멘텀부문은 솔라허브가 필요로하는 핵심 장비를 만들고 있다. 태양전지 최소 단위를 셀이라고 하는데 셀 1장에서 나오는 전압은 매우 작아 60장이나 72장의 셀을 직렬로 연결해 패널형태인 모듈로 제작하게 된다. 이 모듈을 다시 여러 장으로 연결한 것이 태양광 발전시스템이다.
모벤텀부문은 핵심인 진공증착기술을 기반으로 셀과 모듈을 아우르는 제조장비 생산자다. 한화 역시 한화솔루션에 발맞춰 증설투자가 필요했던 상황이다. 회사채를 발행할 유인이 있었다.
평범하게 찍을 수 있었던 회사채가 'K그린본드'로 바뀐 건 김 부사장의 동기부여 덕이다. 김 부사장은 부임 후 '지주사로서의 역할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달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금융팀은 그룹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끝에 일반기업 최초로 'K그린본드'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최초' 타이틀이 갖는 상징성과 이에 따른 홍보효과를 노린 셈이다. 회사채 주관사 선정을 뒤로 미루고 K택소노미 인증을 도와줄 신용평가사부터 먼저 알아보며 상당기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 운좋게도 환경부가 올 3월 K택소노미를 지원하는 시범사업(한국형 녹색채권 발행 이차보전 지원사업)을 진행해 최대 3억원의 지원을 받는 기회도 만들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기관들은 정부가 인증한 녹색채권에 큰 관심을 보였다. 평소보다 기업설명회(IR)요청이 두 배나 몰려들어 IR을 장기간 진행해야 했다. 발행금리가 개별민평보다 낮게 형성된 것은 예상된 결과였다. 자신감을 얻은 한화는 K그린본드 추가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8월 최대 2000억원 규모를 모집할 계획이다.
한편 김 부사장은 한화솔루션이 친정이다. 1968년 9월생으로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한양화학(현 한화솔루션) 경리부로 입사했고 이후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 부장, 그룹 미주본부 부장 등을 지냈다. 2015년 한화테크윈 경영지원실장(상무)을 거쳐 2019년엔 한화컨버전스(옛 에스티아이) 대표이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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