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한화의 녹색채권(그린본드) 수요예측 대흥행은 금리 절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투자자들이 검증이 잘된 녹색채권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업의 생존력'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석탄발전사업자가 미래에도 돈을 벌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반대로 친환경으로 먹거리를 찾아낸 기업은 장기투자 대상이다.
한화는 정부가 깐깐하게 만든 녹색채권 검증시스템을 처음으로 통과한 일반기업(금융사 제외)이다. 친환경사업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투심을 사로 잡은 이유다.
◇그린워싱의 대척점, 그린본드 '모범사례'로
한국전력은 2020년 5500억원 규모로 녹색채권을 발행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신재생사업 확대를 위해 조달한 건인데, 같은 해 탄소중립에 반하는 석탄사업 투자를 병행한 탓이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한전이 해외 석탄 투자를 지속하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린본드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른 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의 대표 사례다. 신용평가사에 의뢰만 하면(돈만 주면) 무리 없이 ‘녹색’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환경부는 그린워싱을 바로 잡기 위해 2021년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핵심은 6대환경목표와 4대핵심요소를 준수하라는 것이다. 6대 환경목표는 △온실가스감축 △기후변화적응 △물의 지속가능한보전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보전 등이다. 이 가운데 하나 이상에 기여하는 채권이어야 한다. 4대핵심요소는 △자금의사용 △평가 및 선정절차 △자금의 관리 △보고(사전, 사후) 등이다.
한화는 환경목표와 관련해선 '온실가스감축'을 타깃으로 삼았다. 자회사 한화솔루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솔라허브)를 건설(총3조2000억원 규모)하고 있는 것을 이번 채권과 연계했다. 해당 계획을 근거로 온실가스 감축 수치를 산출하고, 객관성 확보를 위해 인증기관의 검증도 받았다.
더불어 총 126페이지에 달하는 세부규정을 검토하고 실제 현황에 부합하는지 대조했다. 인증기관 담당자와 수차례 회의를 하며 보완에 보완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허들을 처음 넘은 것이 한화다. 사실 자신감이 있었다. 대그룹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녹색채권을 발행해왔다. 그 만큼 친환경 사업에 연속성이 있었다.
3년 전부터 발행한 회사채는 모두 녹색채권이었다. 2021년 4월 1200억원, 같은 해 5월 1500억원, 2022년 2월 1500억원, 같은해 6월 1000억원 등 올해까지 3년 연속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누적 규모가 5200억원에 이른다. 이번 건까지 합산하면 7100억원이 된다. 상위 4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같은 기간 2회 이상 그린본드를 발행한 기업은 한화를 제외하면 LG디스플레이 밖에 없다.
그리고 올해는 K-택소노미 인증까지 받으며 친환경에 대한 진정성 입증에 쇄기를 박았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과거 녹색채권 인증은 신평사에 돈만 주면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증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며 “이번 건은 환경부의 타이트한 규정에 맞춰 진행했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진정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액에도 개별민평보다 금리 낮아…만기 전략 ‘디테일’도 비결
공모가 흥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최근 글로벌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의 코코본드 상각 이슈로 국내 채권시장 분위기가 위축되고 있던 와중에 거둔 결과물이다.
한화는 이달 5일 1000억원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7배인 7050억원 주문을 받아냈다. 덕분에 2년물(400억원)은 개별민평 대비 -15bp에서, 3년물(600억원)은 -6bp에서 수요를 채웠다. 한화 신용등급은 A+(안정적)이다. 불과 일주일전인 올 3월 30일 수요예측을 한 같은 등급 OCI(A+, 안정적)는 2년물은 개별민평 대비 +44bp, 3년물은 +19bp에서 모집액을 채울 수 있었다. 웃돈을 얹어야 했다.
한화는 공모흥행으로 1900억원으로의 증액을 결정한 것으로 파악된다. 발행액을 계획보다 두 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개별민평보다 낮은 금리로 2년물과 3년물 모두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를 낮춰서라도 물량을 확보하려는 기관이 많았다는 의미다.
IB업계에선 만기구조(트렌치)를 나눈 '디테일'도 흥행비결로 꼽는다. 지난해 6월 발행 때는 3년 단일물로만 구성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시장 경색을 감안해 2년물을 추가했다. 2년물은 대형기관보다는 일반투자자(리테일)들이 선호하는데 전략이 들어맞았다. 2년물엔 리테일 수요가 대거 쏠렸고 3년물은 기관들 위주로 청약을 했다. 금리가 좋게 형성된 이유다.
앞선 IB관계자는 “3년물엔 대형 연기금들 위주로, 2년물엔 증권사 리테일 조직이 공격적인 금리(언더)로 청약을 했다”며 “트렌치를 이분화한 전략이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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