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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전략 분석

현대엘리베이터, 공모채 결단…'더 빨리, 더 많이'

1000억 만기 1개월 전…SVB·CS 사태로 변동성 재확인

이경주 기자  2023-03-30 16:53:17

편집자주

조달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업무의 꽃이다. 주주의 지원(자본)이나 양질의 빚(차입)을 얼마나 잘 끌어오느냐에 따라 기업 성장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최적의 타이밍에 저렴한 비용으로 딜(Deal)을 성사시키는 것이 곧 실력이자 성과다. THE CFO는 우리 기업의 조달 전략과 성과, 이로 인한 사업·재무적 영향을 추적한다.
올들어 공모채 시장에선 AA급 이상 우량기업 위주로 수요가 쏠리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사가 섞여 있는 애매한 A급 구간에선 옥석가리기가 벌어진다. 완판에 성공해 펀더멘털을 입증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미매각이 나서 평판저하를 겪기도 한다.

A급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선택은 ‘도전’이다. 올 만기인 1000억원 사채를 공모채로 차환하기로 했다. 목표는 '더 빨리, 더 많이' 조달하는 것이다.

◇최대 1700억 공모, 내달 중순 발행 목표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오는 4월 중순께 공모채를 발행하기 위해 최근 주관사단을 꾸렸다. KB증권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3개로 알려졌다. 신용등급은 스플릿(신평사가 불일치) 상태다. 한국기업평가는 A+(안정적)으로, 나이스신용평가는 A0(안정적)이다.

목표 발행액은 1200억원이다. 수요예측이 흥행하면 최대 1700억원으로 증액할 계획이다. 만기구조(트렌치)는 2년물(800억원)과 3년물(400억원)로 나누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변동성이 큰 시기에 과감한 전략을 꺼내들었다. 금액을 평시보다 되레 늘렸다. 목표 발행액(최대 1700억원)은 수요예측이 도입된 2012년 이래 단일 건으로 가장 큰 액수다. 기존 건엔 2012년 500억원(32회차), 2017년 1500억원(36회차), 2019년 1000억원(37회차), 2020년 1000억원(38회차) 어치를 찍었다.


차환에 필요한 금액을 훨씬 웃돈다. 이번 공모채은 오는 6월 4일 만기가 돌아오는 38회차(1000억원)를 갚기 위한 용도로 알려졌다. 38회차를 갚고도 700억원이 남는다. 시기적으론 선제조달이다. 발행 목표시기인 4월은 만기일(6월4일)의 1~2개월 전이다.

실무를 이끄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상훈 재경본부 본부장이다. 대학(건국대 무역학) 졸업 후 현대엘리베이터에 입사해 줄곧 경력을 쌓다 2020년 CFO가 됐다. 2010년부터 재정부 팀장을 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조달이 이 본부장 손을 거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SVB 가더니 CS 여파…더 큰 위기 전 결단

IB업계에선 최근 잇따른 글로벌 금융악재를 의식한 행보로 보고 있다. 더 큰 위기가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그리고 필요보다 많은 현금을 비축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올 1~2월 만해도 AA급 중심 회사채에 투심이 쏠리면서 시장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이달 들어선 다시 위축되는 분위기다. 이달 10일 미국 SVB(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했고, 유동성 위기 전이로 크레디트스위스(CS)은행이 UBS로 매각되는 사건이 19일 발생했다. 특히 매각과정에서 22조원 상당의 CS 신종자본증권이 전액 상각됐다. 글로벌 채권투자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이슈다.

이 탓에 국고채와 회사채간 금리스프레드가 최근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장 채권수요가 줄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3년물 기준 국고채와 AA0 스프레드는 2022년 12월 말 1.7%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이후 안정화돼 올 2월말엔 0.6%포인트까지 낮아졌다. 시장 온기가 있던 시점이다. 하지만 이달 29일 기준으론 0.729%포인트로 높아졌다.

국고채 대비 회사채 금리스프레드(사진:더벨 플러스)

최근 일부 수요예측에도 그 여파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한솔제지가 이달 27일 700억 모집을 위한 수요예측을 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였다. 신청액(1360억원)은 모집액을 상회했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발행사 눈높이보다 높은 금리를 원했다. 2년물(400억원 모집)은 개별민평보다 35bp, 3년물(300억원)은 22bp 높은 구간까지 가야 모집액을 채울 수 있었다. 이 탓에 한솔제지는 최대 1500억원으로 증액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IB 관계자는 “기관투자자들이 대다수 조심스러워 하고 있는데 최근 국고채 스프레드가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한솔제지 공모에서 그 여파가 일부 드러난 것인데, 예상보다 금리가 너무 높게 형성됐고 증액도 못했다”이라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일부 리스크를 감안한 것이라는 평가다. 또 앞선 관계자는 “불안감에도 최근 공모채 발행을 결정한 기업들은 더 큰 위기에 대비하려는 것일 것”이라며 “레고랜드 이슈가 있었던 지난해 4분기처럼 아예 시장 문이 닫힐 수도 있는데 지금은 금리 부담이 높을 뿐 조달은 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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