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최근 연구개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요 기술을 하나만 꼽는다면 '인공지능(AI)'이다. 오픈AI의 생성형 AI 모델인 챗GPT 등장으로 AI에 대한 시장 니즈가 급격히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통신3사는 연구개발 조직부터 AI 관련 팀 위주로 꾸리고 있다. 다만 형태는 각기 다르다. 인공지능 관련 조직이 여러 부서 중 하나인 KT, LG유플러스와 달리 SK텔레콤은 아예 연구개발 조직 전체를 인공지능 기치 아래 다시 세팅했다.
담당하는 임원의 직책도 다르다. SK텔레콤과 KT는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에 AI 전담부서를 두고 있지만 LG유플러스는 이와 별개로 최고데이터책임자(CDO) 아래 AI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SK텔레콤, 총괄조직 인공지능 중심으로 전면개편… CDTO 신설도
먼저 SK텔레콤은 작년 말 연구개발 담당 조직을 기존 테크(T3K)에서 인공지능전환(AIX) 조직 아래로 전면 개편했다. SK텔레콤의 모든 사업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산하 조직에도 기존 미래 R&D, Vision R&D, Data R&D에 Media R&D, Open AIX R&D, AIX지원 등을 추가했다. 기존엔 AI 전담 부서명칭을 별도로 두지 않았지만 헤드 조직부터 산하 팀까지 세분화해 AI 적용을 강조했다.
실제 SK텔레콤은 지난해 5월 '에이닷'을 선보이며 B2C분야에서 한국어 GPT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다. 최근 에이닷은 장기기억과 멀티모달 기술을 도입해 정보 저장 기능을 확장했고 텍스트뿐 아니라 사진, 음성 등 복합 정보도 해석하게 됐다.
이밖에 물류 로봇 AI 서비스, UAM 운항 기술, 스미싱·보이스피싱 등 모바일 사기 방지 시스템, 바이오 메디컬 AI 기술 등에도 관련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AIX 담당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을 인물을 외부에서 영입하기도 했다. AI 솔루션 전문 기업 코난테크놀로지에서 SK텔레콤으로 이동한 양승현 부사장이다. SK텔레콤은 지난달 AI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코난테크놀로지 지분을 인수했다.
양 부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했고 2017~2020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 2014~2022년 코난테크놀로지 CTO를 역임했다. 양 CTO는 SK텔레콤에서 AIX 조직을 이끌며 AI 핵심 기술과 인재를 보유한 유망 기업 투자 등을 통해 AI 역량을 확보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아예 '디지털혁신CT(CDTO)'도 별도로 신설했다. 유무선 통신, 엔터프라이즈, 미디어 등 통신 분야의 기존 사업을 AI로 전환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담당할 조직이다.
마찬가지로 신규 영입된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팀 본부장 출신 장현기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디지털혁신CT담당이 조직을 이끈다. 서울대 물리교육 학사, 서울대 물리학 석·박사를 졸업한 뒤 SK C&C, IBM코리아, 삼성전자를 거쳐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본부장,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팀 본부장을 역임했다.
◇KT, 융합기술원 AI2XL연구소 주축 '경량화 버전 챗GPT' 개발
KT도 SK텔레콤처럼 CTO가 연구개발 조직을 총괄한다. 다만 KT의 경우 융합기술원이 전사 CTO 기능을 맡고 있다. 융합기술원 산하에 인프라 DX연구소, 컨버전스연구소, AI2XL연구소, 기술경영담당으로 나눠진다.
이 가운데 인공지능 관련 대표적인 연구소는 AI2XL연구소다. 'AI to Everything Lab'이라는 뜻의 조직 명칭처럼 모바일과 홈, 미디어 등 AI를 적용하는 기술을 연구한다.
예컨대 의료 분야에선 AI를 활용한 당뇨환자 식단관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중증장애인 가구를 대상으로 AI 케어서비스, 치매 돌봄 서비스를 시행하는 등이다. 작년엔 AI 기술로 루게릭병 환우, 청각장애인 음성을 복원하고 AI 산후조리원, 원격으로 식품을 주문하는 'AI 장보기' 서비스 등도 만들었다.
챗GPT 관련해선 이보다 16분의 1 사이즈로 동급 이상의 성능을 내는 한국어 기반 생성현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초거대 AI인 '믿음(MIDEUM)'을 경량화해 운용비와 데이터 학습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부모, 시니어 고객 등을 대상으로 '감성대화' 서비스가 가능해 API 형태로 서비스 기업에 판매할 예정이다.
AI2XL연구소가 AI 관련 연구개발을 주로 하고 있지만 또다른 연구개발 조직인 컨버전스연구소에서도 일부 개발은 AI와도 접목시키고 있다. 컨버전스연구소에선 물류, 교육, 에너지, 이동수단, 보안 등을 여러 통신 및 비통신 기술과 접목시키는 연구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절감 관련해 AI 엔진을 개발하고 소방산업이나 항공기술에도 AI플랫폼을 적용하는 방식 등이다. 이밖에 인프라DX연구소는 기지국 원격관리 솔루션 등 인프라 관련 운영 시스템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현재 CTO 조직인 융합기술원을 총괄하는 김이한 원장(전무)은 충남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전공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 박사를 졸업했다.
김 전무는 융합기술원장뿐 아니라 미래양자융합포럼 공동대표의장, 5G 포럼 대표의장, TTA 표준총회 의장, MEC 포럼 대표의장 등을 동시에 맡고 있다.
CTO 산하에서 AI2XL연구소를 이끄는 배순민 소장은 MIT EECS 박사를 졸업하고 네이버 클로바 AI R&D 디렉터, 한화테크윈 로봇 AI개발팀 리더를 역임했다.
◇LG유플러스, 신설조직 CDO 주축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방점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 KT와 달리 인공지능 관련 개발은 CDO 산하 조직이 주도하고 있다. AI의 중심축이 데이터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DO는 LG유플러스가 2021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총괄하고 AI 개발과 데이터 분석 등을 전담하기 위해 신설한 조직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초 황규별 전무를 외부영입해 수장자리를 맡겼다. 황 전무는 미국 델타항공 고객관리시스템(CRM) 분석 업무를 비롯해 다이렉TV(DirecTV) 비즈니스 분석 수석이사, AT&T 콘텐츠인텔리전스·빅데이터 책임자, 워너미디어 상품·데이터플랫폼·데이터수익화 담당 임원을 역임한 데이터사업 전문가다. 주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분석하며 수익화를 담당했다.
먼저 CDO 조직을 중심으로 LG유플러스는 홈페이지와 유샵(U+Shop) 등 디지털채널에서 단말, 요금제, 프로모션 등을 개인맞춤형으로 제안하는 데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고객센터 콜센터에는 음성인식, 챗봇 등 AI를 적용한 지능화된 플랫폼인 AICC를 연동해 업무효율성을 개선 중이다.
앞으로는 금융·유통 등 다양한 산업군에 AI플랫폼을 적용하는 등 B2B 사업 성과으로도 연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고객의 불만사항과 상담전화의 유형을 자동분류하고 네트워크 품질이 저하될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는 데 AI를 적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업자들은 최근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이를 기반으로 비통신 사업성과를 창출하는 데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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