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성한 단어. 마스크를 썼을 때 얼굴이 더 예쁘거나 잘생겨 보인다는 의미의 '마기꾼'은 코로나19 이후 생겨난 신조어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볼 때는 눈매만 보고 인상을 결정하지만 코, 입, 피부 등의 하관이 눈매와 조화롭지 않았다면 마스크를 벗는 순간 환상이 날아간다.
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IR' 마기꾼이 있다. 보여주고 싶은 정보만 공개하고 감추고 싶은 정보는 마스크 속에 숨겨버린다. 마스크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얼굴을 감추는 것과 같은 원리다.
IR(Investor Relations)은 단순히 기업의 재무지표를 공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미래 영업실적을 의미하는 가이던스를 포함해 자금조달 방안, 주주가치 증대를 위한 전략적 의사결정 등 재무성과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그래서 그 범위가 상당히 포괄적이다.
공개 방식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광범위하다. 금융감독원이나 거래소를 통한 공시는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당연하다.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IR자료나 애뉴얼 리포트, 언론 인터뷰, 컨퍼런스 콜, 투자 설명회, 일대일 미팅, 전화 및 이메일, 동영상 제공, 심지어 홍보를 통한 보도자료 등도 IR 활동에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모든 공표 방식을 IR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는 IR 활동이 법적으로 정해진 공시의무 준수 외에는 회사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눈만 보여주는 '선택적' IR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중 일부는 이런 선택적 IR을 당연히 여긴다. 몇년전부터 실적 전망치를 공개하지 않는 대기업 관계자는 "가이던스와 실제 실적 간 괴리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공개를 중단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괴리가 발생하면 오차를 줄이기 위한 조정 과정을 거치는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정 과정이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얻는 방편이다. 가이던스를 제공하는 다른 국내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다.
자기 회사의 실적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재무부서의 역량이 떨어지거나, 혹은 시장을 대상으로 실적 목표를 과하게 포장하거나, 아예 귀찮은 일은 하지 않겠다거나, 셋 중의 하나 아닐까 싶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훨씬 긴 미국의 IR 활동은 국내 기업에 비해 한단계 아니 두세단계는 앞서가는게 현실이다. 미국 기업이라고 모든 것을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분기 실적 설명회 음원을 게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례 주주 간담회, C레벨의 인터뷰 등 단순한 실적 발표를 넘어서 사적인 질의응답 내용까지 동영상으로 저장해 투자자들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기업의 실적 전망치를 보여주는 가이던스 공개도 차별화하고 있다. 글로벌 가전업체인 월풀은 매출과 영업이익률, 잉여현금흐름(FCF)에 대한 가이던스를 모두 공개하고 있으며 지역별 예상 영업이익률도 제시한다. 손익계산서상 이자비용, 원자재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 관련 수치, 조정 후 세율 등에 관해서까지 추정치를 정확한 숫자로 공개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2021년 1월부터 매년 구체적인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 도매 판매 △자동차 수익성(매출액 성장률, 영업이익률 포함) △투자계획 △자동차 잉여현금흐름(FCF) △주주 환원(주당 배당금)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1월 코스피 상장 이후 단숨에 시가총액 2위에 오른 LG에너지솔루션은 실적발표 기업설명회(IR)에서도 주목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CFO를 포함한 임직원 다수가 참여할 뿐 아니라 실적발표 IR에서 이뤄진 시장 관계자와의 질의응답(Q&A)도 사후에 음성파일로 다시 들을 수 있게 했다. Q&A를 사후에 공개하지 않는 기업이 많은 점을 미뤄보면 높은 시장 관심도에 부합하는 정보 제공을 하는 셈이다.
IR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업이 생각하는 회사의 적정 가치와 시장 눈높이 사이의 간극 해소다. 판매 목표나 실적 전망치 등이 담긴 사업계획, 자금 현황, 자금조달 계획, 주주환원 정책 등을 투자자에게 공유하지 않으면 정보 비대칭에 따라 기업 본질가치와 시장 평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IR의 본질은 모든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투명한 '정보 제공'이다. 아름다운 눈만 보여주는 '마기꾼' IR로는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인데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기업인들의 푸념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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