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유동성 풍향계

한화시스템은 어떻게 '현금부자'가 됐나

대우조선에 5000억 써도 순현금 유지…한화에어로·에너지 지원이 원천

고진영 기자  2022-12-23 14:41:18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한화시스템은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작업에서 유독 자금력이 부각되는 계열사다. 이번 M&A의 주포로 나서는 모회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보다도 가진 돈이 많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 현금의 원천을 뜯어보면 사실 한화에어로의 기여가 컸다. 오너 3세 가족회사인 한화에너지의 지원도 한몫했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시스템 주요주주인 만큼, 승계작업에 윤활유로 돌아올 수 있는 움직임이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3%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번 인수합병을 진행한다. 인수대금은 2조원, 이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조원을 태우고 한화시스템이 그 다음으로 많은 5000억을 투입할 예정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여력이 충분하다. 9월 말 별도 기준으로 한화시스템은 9093억원의 현금성자산을 가지고 있다. 반면 총차입금은 1696억원에 그쳤다. 총차입금에서 현금성자산을 뺀 순차입금이 마이너스(-) 7397억원이니, 여기서 5000억원이 빠져나가도 순현금 상태가 유지된다.


한화시스템은 2000년 삼성전자, 프랑스 탈레스사가 합작해서 세운 방산업체다. 2015년 삼성그룹과 ‘빅딜’을 하면서 한화그룹으로 넘어왔다. 당시 보유현금은 1000억원으로 그룹에서 위상이 소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부자가 됐을까.

오너 3세들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S&C를 2018년 8월 흡수합병, ICT 사업을 양도받은 게 전환점이 됐다. 사업결합에 따라 한화시스템은 420억원의 현금유입이 있었고 500억원대였던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도 이때부터 2000억원 안팎으로 뛰었다.


2019년 11월에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하면서 약 990억원의 자금을 더 확보했다. 또 그해 운전자본투자 규모가 2000억원 이상 줄어든 덕분에 별도 영업활동현금흐름(NCF)이 전년의 3배를 넘는 4087억원을 기록했다.

합병으로 유입된 현금과 상장자금, 영업현금 규모 개선이 합쳐지면서 한화시스템의 금고는 급격히 넉넉해졌다. 한화S&C를 품기 전인 2017년 별도 현금성자산은 1290억원에 불과했으나 2019년 6135억원으로 불었다.

지난해는 또 한 번의 도약이 있었다. 2021년 6월 유상증자로 1조1535억원의 실탄을 끌어모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약 5000억원, 에이치솔루션(현 한화에너지)이 1385억원을 지원사격했다. 유증 결과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분율은 46.73%, 에이치솔루션의 지분율은 12.80%가 됐다.

이중 에이치솔루션은 지금의 한화에너지다. 앞서 한화시스템이 흡수한 한화S&C 역시 에이치솔루션에서 물적분할됐다. 오너 3세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원 부사장,김동선 전무 3형제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화에너지는 승계작업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히 한화시스템 기업가치가 올라야 추후 한화에너지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한화S&C 분할 및 합병, 순차적으로 이어진 한화시스템 유증이 후계구도를 닦는 작업과 무관치 않았던 셈이다.

실제 한화시스템은 사업확장에 공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유증으로 마련한 자금을 에어모빌리티, 위성 통신, 디지털 플랫폼 등 크게 3가지 신규사업의 지분투자에 쓰는 중이다. 이와 관련해 한화인텔리전스, 한화시스템 UK, 한화시스템 USA, 싱가폴 H파운데이션, 영국 한화페이저(Phasor) 주식을 추가 취득하고 미국 오버에어(Overair)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데 올해만 6887억원을 사용했다.


여기에 2024년까지 추가적으로 3000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지분 인수에 들어갈 5000억원과는 별개의 투자다. 신사업 중 3년 전부터 진행해온 UAM(도심항공교통)의 경우 2020년 1월 지분투자를 시작한 오버에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위성통신은 원웹(OneWeb)과 한화페이저, 카이메타를 주축으로 하고 디지털플랫폼은 H파운데이션이 핵심이다.

다만 대부분이 기술적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눈에 잡히는 성과로 돌아오기까진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상용화 시점도 확정하기 어렵다. 이런 불확실성과 투자부담은 본업인 방산업이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방위산업은 특성상 수익성 절대치는 높지 않지만 일정 수준의 마진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국방예산을 올해부터 5년간 연평균 5.8% 늘리기로 한 만큼 성장기조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9월 말 기준 한화시스템의 방산부문 수주잔고는 5조2809억원이다. 3년 평균 매출액의 3.9배 수준이며, 올해 8000억원을 신규 수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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