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유동성 풍향계

'한진칼 투자' 팬오션, 추가 지분매입 여력은

융통 가능 자금규모 1조 추정…1년 내 만기도래 차입 6000억

고진영 기자  2022-12-08 08:23:16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더벨이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지난해 이스타항공 인수전에서 발을 뺀 하림 계열 팬오션이 한진칼 주주로 등판했다. 김흥국 하림그룹 회장이 이미 항공업에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번 지분 매수가 심상치 않다는 시선이 주를 이룬다.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지 행보는 미지수지만 팬오션의 곳간은 우선 충분히 차 있다.

팬오션이 6일 호반건설로부터 사들인 한진칼 주식은 1259억원어치로 지분율 5.0%에 상당한다. 시세보다 5% 이상 저렴하게 계약이 이뤄졌다. 팬오션은 5월부터 조금씩 한진칼 주식을 사모아 기존에도 0.8% 규모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거래로 쥐게 된 지분은 총 5.8%다.

매입 배경에 대해 팬오션은 ‘단순투자 목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선 지분을 더 매집할 가능성을 낮지 않게 보고 있다. 게다가 양계농장에서 출발한 하림은 태생부터가 확장에 공격적이다. 호반건설과의 협력이나 추가적 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현재 호반건설에 남은 한진칼 지분은 11.58%다. 팬오션이 앞선 거래와 비슷한 가격에 이 주식들을 매수할 경우 약 2900억원이 더 필요하다. 먼저 지불했던 매매대금과 합쳐서 4200억원 안팎을 쓰면 17.38%의 한진칼 지분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20.18%)이 48%를 넘는 우호지분을 확보한 만큼 경영권을 노리기엔 턱없는 규모다. 그러나 산업은행(10.58%)이 한진칼 지분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게임도 아니다.

팬오션의 투자여력은 어떨까. 팬오션은 코로나로 수혜를 입으면서 연간 순이익이 1000억원대에서 5000억원 규모로 확대됐다. 지난해 말 별도기준으로 5267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3분기 말까지만 따져도 그보다 더 많은 540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자연히 보유현금 역시 가파르게 늘었다. 9월 말 별도기준으로 7378억원의 현금성자산을 가지고 있다. 2020년 1640억원 수준이었는데 2년 만에 4배 이상 불어났다. 투자와 재무활동으로 빠져나간 돈이 많아졌지만 영업에서 창출된 현금이 급증한 덕분이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경우 작년에 9312억원, 올해 3분기 6250억원을 나타냈다. 연간 EBITDA가 8000억~9000억원이니 바로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은 약 1조원으로 추산된다.


반대로 지출해야할 돈을 계산해보자. 팬오션은 해운업 호황으로 운용 선대를 늘리면서 차입금도 함께 증가했다. 2020년 1조4348억원(별도기준)이었으나 9월 말 2조6523억원을 기록했다. 선박차입금이 1조8000억원으로 6000억원가량 증가한 영향이 컸다. 팬오션의 선박차입금은 BBCHP(국적취득 조건부 나용선) 방식의 차입거래인데, 장기간 용선계약을 맺은 뒤 용선료를 모두 내면 소유권을 취득하는 구조다.

이 선박금융과 회사채, 은행 대출을 모두 합쳐서 1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성 차입은 5999억원이다. 2759억원의 선박금융을 제외하면 대부분 차환이 예상된다. 금리의 경우 대개는 리보(LIBOR, 런던 은행 간 금리)에 연동하는 변동금리로, 구체적 이자비용은 작년에 452억원 정도가 나갔다. 올해는 3분기까지 449억원을 이자로 지급했으며 연환산할 경우 약 600억원이다. 일부 차환할 부채를 빼면 갚을 돈과 이자를 합쳐 1년간 대략 4000억원 내외의 자금이 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또 팬오션은 낡은 선박 교체와 선대 확충을 위해 9월 말 기준 15척의 선박 건조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에 인도될 선박들인데 총 선가는 21억5323억달러에 이른다. 이중 앞으로 계약에 따라 지출될 예상금액은 19억6066만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약 2조5870억원이다. 이를 기반으로 선가지급 스케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계산했을 때 2023년부터 4년간 매년 6500억원 수준의 자본적지출(CAPEX) 지출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CAPEX의 경우 상당 부분이 BBCHP 방식으로 이미 조달을 마친 상태로 추측되기 때문에 추후 차입금이 늘어나는 형태가 될테고 현금에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지금 기준으로는 배당까지 연간 5000억~6000억원 안팎을 지출할텐데 보유현금과 EBITDA를 고려했을 때 외부자금을 끌어오지 않고도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입할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