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경쟁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선 가운데 '마이웨이'를 공언했다. 인위적 감산을 고려치 않는다는 입장인데 이는 시설투자(CAPEX) 규모 역시 큰 변동이 없을 것이란 의미다.
경기 사이클이 빨라지면서 불황기에 투자를 줄인 것이 호황기에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탓에 일관성 있게 페이스를 유지하며 투자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막대한 현금보유고를 바탕으로 한파를 견딘 후 시장지배력을 더 확대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빨라진 경기사이클, 시황과 무관하게 일관적 투자반도체는 '첨단산업의 쌀'로 불리는 만큼 경기를 민감하게 타는 업종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경기에 따라 시설투자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왔다. 경기에 좋을 때는 투자를 많이 하고 불황일 때는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경기에 가장 민감한 메모리 기업들은 CAPEX를 줄이며 감산에 들어갔다. 그나마 덜 영향 받는다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도 비용 절감과 투자 축소 및 연기에 나서고 있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가 올해 CAPEX를 9.1% 하향 조정한 데 이어 세계 3위 UMC도 36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16.7% 줄였다.
문제는 경기 사이클이 빨라지면서 불황기에 투자를 줄인 것이 호황기에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제조공정 특성상 공장은 하루 24시간, 1년 내내 쉬지 않고 돌려야 한다. 즉 가동률 100%를 유지하는 체제라 한번 가동을 멈추면 재가동을 시작해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린다. 적기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이 벌어진 이유다.
이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대표는 "업앤다운에 의존하는 투자보다 우리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시황과 무관하게 일관적으로 투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전자 측 3분기 컨퍼런스 콜을 통해 반도체 사업의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올해 CAPEX도 계획대로 진행한다. 3분기까지 반도체에 29조100억원을 투자했고 4분기에는 18조원을 더 투입한다. 연간 총 47조7000억원 규모다. 작년(43조6000억원)보다 4조원 이상 더 지출한다.
◇한파 견딘 후 내년 점유율 확대 노린다삼성전자는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수준으로 인풋(input) 투자를 지속하고 업황과 연계해서 CAPEX를 유연하게 운영한다는 기조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이익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게 목적이다. 당장의 수요 부진을 이겨낼 만큼 원가경쟁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이다.
내년 메모리 업황이 반등할 경우 감산을 택한 업체들보다 빠르게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의 양대 축인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글로벌 1위로 규모의 경제를 갖춘 만큼 경쟁사 대비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보유 현금성자산이 120조원을 넘어 체력적 기반이 탄탄하다. 되려 인수합병(M&A) 기회도 노릴 만하다는 평이다.
내년에도 CAPEX는 40조원대 중후반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분기 컨퍼런스 콜 현장에서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본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고객사 재고조정 폭이 커 수요 약세가 보이는데 내년에는 데이터센터 증설도 확대되고 신규 CPU(중앙처리장치)를 위한 DDR5 채용도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