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움직임은 돈의 흐름을 뜻한다. 자본 형성과 성장은 물론 지배구조 전환에도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손길이 필연적이다. 자본시장미디어 더벨이 만든 프리미엄 서비스 ‘THE CFO’는 재무책임자의 눈으로 기업을 보고자 2021년말 태스크포스를 발족, 2022년 11월 공식 출범했다. 최고재무책임자 행보에 투영된 기업의 과거와 현재를 ‘THE CFO’가 추적한다.
대한민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이 부족해 물건을 만들고 기계를 돌리기 위해선 자원을 대거 수입해야 한다. 또한 인구 밀집도에 비해 절대적인 규모는 크지 않아 내수시장이 작기 떄문에 수출을 늘려야 수익을 확대할 기회를 얻는다. '운명적으로' 무역으로 먹고사는 환경에 있다.
이는 다른 나라 통화가치, 특히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격 변동에 늘 촉각을 세우는 배경이다. 달러화를 찾는 수요가 증가해 비싸지면 달러화를 '주는' 수입 부문은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달러화를 '받는' 수출 부문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대로 달러화를 찾는 수요가 감소해 싸지면 수입 부문엔 좋고 수출 부문엔 좋지 않다.
하지만 마냥 수입만 또는 수출만 하는 기업(국가)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환율 변동 시기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일단 주요 기업 CFO들은 지난 9월 말 이후 이어지는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내년 1분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CFO들이 고환율과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다.
◇ 응답자 중 57.7%, 내년 1분기 말 환율 '1400원대 이상' 선택
'THE CFO'가 국내 주요기업 CFO 123명으로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말 기준으로 볼 때 원달러 환율은 어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라는 물음에 '1400원 이상 1450원 미만'으로 답한 CFO가 41명으로 가장 많았다.
'1450원 이상 1500원 미만'으로 답한 CFO는 28명이었다. 11월 초 현재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내년 1분기에 이보다 더 뛸 것으로 예상했다. 1500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CFO도 2명이나 있었다.
정리하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71명(57.7%)이 내년 1분기에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로 진입한 때인 9월 말을 시점으로 이같은 고환율 상태가 최소 6개월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얼어붙었던 2008~2009년에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선 적 있다. 하지만 지속기간은 약 4개월이었다. CFO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환율로 봤을 때 적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와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물론 원 달러 환율이 1400원대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CFO들도 있었다. 35명의 CFO가 '1350원 이상 1400원 미만'을, 14명의 CFO가 '1300원 이상 1350원 미만'을 택했다. '1300원 미만'을 선택한 3명의 CFO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CFO들이 고환율을 전제로 재무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결론엔 변함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수습된 이후 2009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를 기준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1300원 이상도 CFO들에겐 예년과 크게 달라진 경영 환경인 셈이다.
◇ CFO들, 환헤지 전략과 함께 '유동성 확보'로 대응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정책 때문이다. 올해 3월 0.2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11월 현재 3.25%로 8개월 사이에 300bp가 뛰어 올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가 바뀌기 전에 Fed가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위시한 긴축정책을 펼치면 시중에 풀린 달러화가 줄어들게 돼 달러화 가치가 오르게 된다. 급등하는 달러화 가치를 잡기 위해선 국내 기준금리도 크게 올려야 한다. 금리와 환율의 상관관계가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내년 1분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 CFO 71명 가운데 29명(40.8%)이 '금리'를 가장 관심 갖고 보는 매크로 지표라고 응답했다. 양 국가의 기준금리 상승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자비용을 관리해야 하는 CFO들에게 금리는 지속해서 살펴봐야 하는 지표기도 하다.
기준금리와 그에 따라 움직이는 환율은 CFO들이 관심 갖고 살펴봐야 하는 지표이지만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따라서 CFO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 전략도 다소 제한적이다. 금융상품을 활용한 환헤지를 당국 등에서 추천하지만 많은 기업이 자연헤지(Natural hedge)를 주된 전략으로 삼고 있다.
자연헤지란 외화 수입과 지출을 연동해 자연스럽게 환차손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를 피할 수 있다.
일례로 매출과 시가총액 국내 1위인 삼성전자는 올해 반기보고서에서 "통화별 자산과 부채 규모를 일치하는 수준으로 유지해 환율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거래와 예금, 차입 등 금융 거래 발생 시 현지 통화를 사용하거나 입금과 지출 통화를 일치시킴으로써 환포지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해 유동성을 미리미리 확보해놓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는 평가다. 이미 기업들은 이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양새다. 회사채 시장 위축으로 은행 대출을 늘리고 있다. 지난 10월 말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700조원을 넘어섰다. 고금리로 전보다 많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함에도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은행 대출 자금의 대부분을 다시 은행 예금에 넣은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비상시에 손쉽게 유동성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금리와 환율을 바라보는 CFO들의 머릿속엔 '유동성 확보'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상황이다.
*2022 CFO 서베이는
THE CFO 는 2022년 3월 말 시가총액 기준 코스피 200위, 코스닥 50위 내 기업과 비상장 금융회사(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에 소속된 CFO를 대상으로 2022년 10월 18~25일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250개 기업 가운데 123개 기업이 답변했으며 CFO가 직접 설문에 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설문은 구글 서베이 도구를 활용했으며 익명으로 진행했습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