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학사 여천NCC에서 최근 발생한 중대재해와 연이은 회사채 미매각 악재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에 대해 반추하게 한다. 여천NCC는 공교롭게도 2000억원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2월 14일 월요일)을 하기 직전 영업일(2월 11일 금요일)에 8명의 사상자를 낸 폭발사고를 겪었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한 결과는 '공모 강행'이었다. 그리고 한 건의 기관 신청도 받지 못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명확했다. 미매각이 날 경우 주관사가 물량을 떠안는 총액인수 계약을 했기 때문에 회사채는 규모는 1200억원으로 줄였지만 계획대로 찍을 수 있었다.
반면 ESG에 반하는 채권으로 낙인이 찍혔다. 향후 수년 동안은 회사채 시장을 찾지 못할 정도로 평판이 실추된 것으로 투자은행(IB) 업계는 판단했다.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회사채로 조달하는 여천NCC 입장에선 재무적 파장이 상당히 클 수 있다. 더불어 주관사에게 부담을 떠넘긴 '갑질' 발행사로도 평가됐다. 강행을 택하지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부담과 오명들이다.
주목할 점이 있다. 이 같은 결과를 낳은 의사결정에 여천NCC CFO는 애초 배제돼 있었다. 상법(제469조) 상 회사채 발행은 이사회 결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여천NCC도 이번 공모채 발행에 대한 안건을 2월 8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승인했다. 2월 11일 사고가 나자 영향을 반영한 정정 증권신고서를 내기 위해서 당일 추가 결의도 했다.
그런데 여천NCC 이사회엔 CFO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태생적 배경이 있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옛 대림산업)이 절반씩 출자해 만든 합작사다. 이사회는 양사 힘의 균형을 맞추는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총 6인인데 상근 사내이사는 한화 측 최금암 공동대표(사장)와 대림 측 김재율 공동대표(부사장) 둘 뿐이다. 나머지 4인은 비상근으로 양그룹에서 각각 두 명씩 선임한 기타비상무이사들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양측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건을 승인할 수 없도록 한 구조다. CFO가 이사회에 참여하면 캐스팅보트라는 막중한 권한을 쥔다. CFO가 구조적으로 이사회에 진입하기 힘들다. 결의사안을 수행하는 실무자로 CFO 역할이 제한된다.
물론 여천NCC CFO가 이번 이사회 결의 과정에서 조언을 했을 수는 있다. 주관사단은 CFO에게 공모를 보류하자고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CFO가 어떤 의견을 이사회에 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CFO에게 권한과 책임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전문가들은 CFO의 역할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년 전 만해도 영향이 제한적이었던 ESG나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이슈들이 이젠 기업 재무를 흔드는 변수로 떠올랐다. 재무 불확실성은 결국 사업에 악영향을 준다.
CFO는 회사 사정은 물론 경영환경 변화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또 민첩한 사고와 판단도 요구된다.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여천NCC 뿐 아니라 CFO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 모든 기업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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