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는 기업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 단기간에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공격적인 시설 투자는 기업 경쟁력 제고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언제나 옳은 수단은 아니다. 무리한 투자는 결국 막대한 부채와 심각한 재정난을 야기할 수 있는 탓이다. 특히 실적 부진과 맞물릴 시 재무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업계 중 유일하게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업황 부진에도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키운다는 목표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9조원 규모의 샤힌 프로젝트 투자를 진행하며 회사채 시장의 단골 손님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적 악화에도 계획한 투자를 집행하며 순차입금 5조원을 넘어서는 등 재무 부담이 커진 탓이다.
◇순차입금 5조 돌파…업황 부진에 재무 '빨간불' 에쓰오일은 지난해부터 총차입금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2022년 5조2184억원에 머물던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5조8352억원으로 불어났다. 이후 올 상반기 말에는 7381억원가량 더 늘어나 6조5670억원을 기록했다. 차입금이 늘어나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며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무 부담이 단기간에 커진 배경에는 대규모 투자가 꼽힌다. 에쓰오일은 2026년 상반기까지 연간 18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석유화학복합시설을 울산광역시에 구축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석유화학의 매출 비중을 끌어올려 수익 다각화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샤힌 프로젝트의 총 투자비는 9조2580억원이다. 에쓰오일은 지난해까지 샤힌 프로젝트에 1조6000억원을 집행했고, 올해는 2조7000조원을, 내년에는 3조6000조원 수준의 투자비를 지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업황 부진에 떨어진 현금창출력이 차입금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현금 곳간이 줄어들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에쓰오일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318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기준 1조9470억원에서 반 년만에 6285억원이 줄어들었다. 반면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과 유동장기부채가 3조6152억원에 달해 현금보다 단기간에 갚아야 할 부채가 더 많은 상태에 놓였다.
순차입금도 5년 만에 다시 5조원대를 진입했다. 올 상반기 말 에쓰오일의 순차입금은 5조248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6조2811억원에서 지난해 말 3조3882억원으로 줄었지만, 올 상반기 1조3586억원 늘어났다. 이자비용도 2022년 1511억원에서 지난해 2369억원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도 1407억원의 이자비용을 지출했다. 에쓰오일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143.2%, 30%를 기록했다.
3분기도 재무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유가가 전 분기 대비 배럴당 약 10달러 하락해 정유 수익성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금융업계는 에쓰오일이 올 3분기 영업이익 1757억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년 동기 영업이익 8589억원 대비 79.5% 감소한 수치다. 유가가 높은 시점에서 구매한 원유의 재고평가손실이 늘어나 실적 부진을 이끌 것으로 분석됐다.
◇샤힌프로젝트 투자금…유동성 관리 심혈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완공하기 위해 현금 유동성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단기간에 커진 재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택한 것은 사채 발행이다. 올 8월 한국기업평가의 신용등급 평가에서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이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상향된 부분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쓰오일은 다음달 4일 2400억원 규모의 무보증사채 발행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3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한데 이어 한 달만에 회사채 시장을 다시 찾았다. 에쓰오일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은 올들어 세 번째다. 총 9000억원 규모로, 2022년 2800억원, 2023년 3500억원 대비 크게 늘어났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투자금의 일부를 외부 자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사채를 늘리고 있다. 사채는 상대적으로 장기 차입 구조 설정에 유리하고, 신용등급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에쓰오일 커버리지 역량은 다소 위축된 상태다. 지난해 연결 이자보상배율은 전년 대비 약 17%p 하락한 5.72배로 나타났다. 앞서 견조한 수익성을 바탕으로 이자 비용에 여유 있게 대응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다소 빠듯해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