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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 Watch

회사채 '품귀현상', 자금 몰리는데 석달째 '순상환'

수급 불균형으로 기관 수요예측 경쟁 치열…지속되는 공모채 시장 '강세'

백승룡 기자  2024-06-21 16:22:19
“회사채 시장에 자금이 몰리는데 발행물량이 많지 않아서 난리입니다”

국내 한 증권사의 투자은행(IB) 부문 임원이 최근 건넨 말이다. 지난달 1분기 감사보고서 제출을 마친 기업들이 회사채 시장을 찾아 자금조달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해 회사채 시장으로 밀려든 자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면서 회사채 시장의 발행금리는 기준금리(3.5%) 수준까지 낮아지는 추세다.

◇ 회사채 시장으로 쏟아지는 자금…금리인하 지연에도 투심 ‘강세’

최근 2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에 나섰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모집액의 10배가 넘는 2조2750억원에 달하는 투자수요를 모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공모채 시장의 첫 수요예측 주자이기도 했다. 당시 2000억원 모집에 나서 1조4200억원의 매수자금을 받았다. 약 5달 만에 재차 공모채 시장을 찾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같은 금액을 모집했지만 투자수요가 60%나 불어난 것이다.

연초부터 채권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첫 금리인하는 아직 단행되지 않았고 시점도 빨라야 연말께로 늦춰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금리인상 사이클이 끝나고 앞으로의 금리 방향성은 인하 기조일 것이라는 전망에 자금은 채권시장으로 꾸준히 몰리고 있다. 특히 국고채 금리가 모든 만기에서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어 회사채의 금리 메리트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통상 우리나라 회사채 시장에서는 신용등급 AA급 이상 우량채 선호도가 강해 ‘A급 이하’ 비우량채와 투자수요 양극화가 고질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AA- 등급 회사채 금리도 3년물 기준 3.6%대로 낮아지다 보니 비우량채에 대한 수요도 커졌다. 이달 400억원 규모 모집에 나섰던 DL에너지(A0)는 2760억원의 자금이 몰렸고, 대한항공(A-)은 2500억원 모집 대비 9070억원에 달하는 수요를 모았다. 이들 모두 개별민평금리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됐다.

공모주 하이일드 펀드가 가세하면서 BBB급에 대한 수요까지 강하다. 공모주 하이일드 펀드는 신용등급 BBB+ 이하 회사채 45%를 포함해 국내 회사채 60%를 담은 경우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펀드다. 지난 3월과 4월 공모채 발행에 나선 한진(BBB+)과 두산(당시 BBB0)은 개별민평금리보다 무려 90~145bp(1bp=0.01%포인트) 수준으로 금리를 낮추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배정 혜택을 받으려는 목적에 금리가 낮더라도 BBB급을 담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여기에 개인투자자들의 회사채 수요도 커졌다. 지난 2021년 4조5675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개인의 순매수액은 2022년 20조6113억원, 2023년 37조5620억원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순매수액도 이달까지 21조원을 넘어 기금·공제(19조8743억원), 보험(11조9837억원) 등을 제치고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민간석탄발전사 삼척블루파워가 ESG 이슈로 인해 지난 2021년부터 기관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이달 수요예측에서 회사채 완판에 성공했는데, 매수주문 대부분이 개인을 겨냥한 증권사 리테일 수요였다.
*출처=금융투자협회
◇ 선제적으로 자금조달 마친 기업들 ‘느긋’…회사채 품귀현상에 스프레드도 감소

투자자들과 달리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올해 초 앞다퉈 회사채 시장에 나서면서 현금을 비축해 둔 덕분이다. 총선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터질 것이라는 우려로 4월 초까지 공모채 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적어도 회사채 시장에 나설 수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 연내 금리가 눈에 띄게 낮아질 때까지 추가적인 조달을 미뤄두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면서 회사채 시장은 총선 이후 석 달째 순상환 기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7조1047억원 규모의 순발행을 나타냈던 회사채 시장은 2월 5조3673억원, 3월 2조1388억원 등으로 발행액이 상환액을 압도했다. 그러나 4월 3조9155억원으로 순상환으로 돌아선 뒤 5월에도 상환 규모가 발행액보다 3570억원 많았다. 이달에도 1~20일 집계 기준 6273억원 규모 순상환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투자수요는 견조한데 회사채 발행물량이 줄어들면서 품귀현상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무위험 채권인 국고채 대비 회사채에 적용되는 가산금리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AA- 등급 기준 3년 만기 크레딧 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차)는 올해 초 75bp 수준에서 현재 45bp 안팎으로 좁혀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부동산금융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채권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데, 국고채는 이미 기준금리를 크게 밑돌고 있어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며 “회사채를 담고 싶어도 우량한 기업들의 물량이 너무 한정적”이라고 전했다.

수급 불균형으로 공모채 시장이 강세를 나타내자 새로운 양상도 펼쳐지고 있다. 그간 카드사·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들은 신종자본증권을 사모시장에서만 발행했지만 올해 공모시장으로 연이어 이동하고 있다. KB국민카드가 지난 4월 여전사 최초로 공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메리츠캐피탈도 이달 공모 방식으로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섰다. 이들 모두 모집액을 넉넉하게 웃도는 수요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건설·석유화학 등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업종에 대해서는 기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5위에 달하는 GS건설도 미매각을 피하지 못했다. 수요예측을 피해 이달 218억원 규모 사모채를 발행한 중견건설사 한양은 1년 만기 금리가 8.5% 수준으로 높았다. 석유화학 업체인 여천NCC와 효성화학은 지난 3~4월 공모채 시장에 나섰지만 모집액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효성화학은 오는 24일에도 재차 공모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지만 시장의 투심은 여전히 비우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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