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 흔히 이사회 운영 '모범생'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금융지주 이사회는 여러 대기업의 롤모델로 꼽힐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는다. 그에 반해 저축은행 이사회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대표이사의 장기 재임 사례가 많다. 상임이사 임기도 길어 사외이사의 견제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저축은행 이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한국투자저축은행(한투저축은행)이 14년 만에 새로운 사내이사를 선임했다. 전찬우 신임 대표이사와 함께 사내이사로 활약할 인물은 정용혁 영업2본부장(상무)이다. 정 상무의 이사회 진출을 두고 사내이사진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투저축은행 사내이사는 대표이사의 경영 파트너로 의미가 깊다. 특히 김병욱 전 리스크관리본부장(CRO·부사장)은 2010년부터 작년 말까지 13년간 사내이사로 활동했다. 사내이사 재임 동안 대표이사가 교체됐지만, 그대로 사내이사로 활동하며 신임을 받았다.
◇대표이사-사내이사 '경영 파트너'…김병욱 전 부사장 13년 재직
한투저축은행 사내이사는 대표이사 1인과 임원진 1인으로 모두 두 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까지 13년간 사내이사로 활동해온 인물이 있다. 바로 김병욱 전 부사장이다. 김 전 부사장은 리스크관리본부장(CRO)으로서 2010년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김 전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처음 선임될 당시 대표이사는 남영우 전 사장이었다. 남 전 사장은 2007년 한투저축은행 대표이사로 취임해 2018년까지 11년간 재직한 장수 CEO다. 당시 전무였던 김 전 부사장은 남 전 사장 임기 끝까지 사내이사로 함께 활동했다.
2019년 대표이사 교체에도 김 전 부사장은 사내이사 자리를 지켰다. 남 전 사장 후임으로 낙점된 인물은 바로 권종로 전 사장이다. 권 전 사장 부임과 함께 김 전 부사장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들은 2019년부터 작년 말까지 5년간 사내이사로 재직했다.
사내이사는 사장 다음으로 높은 직급의 C레벨 임원이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이 주로 선임된다. 이런 경우 임원으로서 임기가 끝나며 사내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난다. 임원이 장기간 사내이사로 재직하는 건 임기직이라는 점에서 흔치 않은 경우다.
그렇다면 김 전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오랫동안 재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대표이사가 장기 재임하는 저축은행업계의 관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사내이사로 재직하며 대표이사의 경영 파트너로서 지근거리에서 보좌한다.
두 번째로 김 전 부사장이 한투저축은행은 물론 한국투자금융지주(한투금융지주)로부터 신임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전 부사장은 한투금융지주에 겸직하고 있지 않지만, 지주가 계열사 인사를 관리하는 구조다. 지주로부터 신뢰를 받으며 임원 및 사내이사 임기를 보장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부사장은 CRO로 재임하면서 한투저축은행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 김 전 부사장의 퇴임 전 마지막 해였던 지난해 유동성비율은 245%로 규제 기준 100%를 크게 웃돌았다. 작년 말 BIS비율은 15%, 고정이하여신비율은 6%를 기록했다.
◇'뉴페이스' 정용혁 상무…영업통 이사회 진출
한투저축은행 사내이사진에 14년 만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김병욱 전 부사장이 지난해 말 퇴임하면서 새로운 인물이 사내이사로 선임된 것이다. 바로 정용혁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정 상무는 대외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1968년생인 정 상무는 광운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2019년 1월 임원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지금까지 줄곧 영업본부에 몸담아온 '영업통'이다.
정 상무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영업3본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영업3본부는 테헤란로지점, 종로지점, 은평지점 등 6개 굵직한 지점과 제주출장소 한 곳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이후 이름만 바뀐 영업4본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업2본부장으로 선임됐다. 영업2본부는 최근 영업3본부와 4본부가 통합돼 탄생한 조직이다. 11개 지점과 제주출장소가 속해 있다. 정 상무가 총괄하는 지점 수가 늘어나면서 그의 영향력도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정 상무가 전찬우 신임 대표이사와 함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투저축은행에는 대표이사 아래로 전무나 부사장 직급이 없다. 대표이사 다음으로 바로 상무로 이어져 상무 4인과 상무보 10명이 있다. 상무급으로는 김상필 경영관리본부장, 유재권 리스크관리본부장, 이강국 소비자보호팀장, 그리고 정 상무가 있다.
영업통인 정 상무가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리스크관리에서 영업 확대 전략을 펴나갈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앞서 사내이사였던 김 전 부사장은 리스크관리 전문가였다. 이와 달리 영업 전문가 정 상무가 이사회에 입성하며 영업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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