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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카카오, 해법은

카카오페이, 시버트 인수 무산…비욘드 코리아 '찬물'

2차 지분 인수 않기로, 합의금 500만 달러…이사회 멤버 자격은 '유지'

이지혜 기자  2023-12-20 14:57:42

편집자주

카카오가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김범수 창업자는 물론 핵심 경영진과 그룹 계열사까지 사법리스크에 휘말렸다. 그러나 사업을 멈출 수도, 잠시 쉴 수도 없다. 인공지능(AI)은 물론 헬스케어, 엔터사업까지 당장 신성장동력을 가동하지 않으면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카카오가 국내 최고의 플랫폼 기업으로서 저력을 입증할 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카카오는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카카오의 속사정과 위기를 극복할 활로를 조명했다.
카카오페이가 미국 증권사를 인수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미국 증권사 시버트 파이낸셜(Siebert Financial Corp. 이하 시버트)이 정부의 카카오를 향한 각종 제재를 근거로 거래를 종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하더니 결국 인수 무산으로 결론을 냈다.

카카오페이의 시버트 인수는 단순히 한 증권사를 인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회사인 카카오페이증권이 글로벌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잡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 창출, 더 나아가 그룹의 비전인 비욘드 코리아를 달성하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은 셈이라서다.

다만 카카오페이는 시버트에서 적잖은 금액의 합의금을 받는다는 점은 위안거리일 것으로 보인다. 또 기 소유 지분 유지, 이사회 참여 등으로 협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사법리스크가 완화하면 카카오페이가 시버트 인수를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버트 인수 무산, 사법리스크 결국 사업 치명타로

20일 카카오페이에 따르면 “이달 19일 양사 간 합의에 따라 2차 거래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시버트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카카오페이와 두 번째 주식 매매 계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카카오페이는 올해 5월 27일까지 시버트 주식 807만5607주를 취득하고 내년 중 나머지 2575만6470주를 취득할 예정이었지만 1차 주식 취득만 종결되고 2차 주식 취득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카카오페이가 보유한 시버트 주식은 19.9%에 머물게 됐다. 당초 51%의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까지 보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예견된 수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버트는 당초 발간한 3분기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당국이 카카오페이와 모회사 카카오 등에 제재를 취한 사건이 2차 거래를 종결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며 “거래를 종결하기 위한 조건이 충족하지 않았다”고 기재했다.

또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 달 11일 카카오페이에 통지서를 전달했다. 카카오페이는 이튿날 이런 내용에 즉각 반박하는 답변서를 시버트에 냈지만 결국 인수작업이 무산되고 말았다.

카카오그룹에 닥친 사법리스크가 실제 사업에 지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카카오페이의 모회사인 카카오와 계열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혐의로 금융감독원과 검찰 등으로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다. 해당 딜을 지휘했던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 투자 총괄 대표는 관련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범수 쇄신의지에도 결국 ‘비욘드 코리아’ 제동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사법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창업자는 10월 30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사법리스크가 더 이상 그룹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경영쇄신위원회를 설립, 추가적 준법 위반 사태를 예방하고자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설립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혐의 관련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인데다 김 창업자도 관련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만큼 시버트 측에서는 리스크가 여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페이에게 시버트 인수 무산은 타격이 크다. 카카오페이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내 경쟁에서 벗어나 글로벌로 시야를 넓히는 그룹의 경영전략 ‘비욘드 코리아’를 시버트를 통해 이루려고 했다. 다시 말해 시버트를 카카오페이 글로벌 사업의 미국 거점으로 삼으려 했다는 의미다.

시버트를 향한 카카오페이의 의지는 금액에서도 드러난다. 카카오페이는 시버트 지분 51%를 인수하는 데 1039억원을 쓰려고 했다. 카카오페이가 그동안 취득한 타법인 지분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쓸 계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버트는 1967년 종합증권업에 진출한 미국 소재의 중소형 증권사로서 55년 이상의 탄탄한 업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있으며 6개 자회사와 함께 증권 트레이딩, 투자 자문, 기업 주식 계획 관리 솔루션 등을 포함한 다양한 중개와 금융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버트의 이런 네트워크는 후발주자로서 강력한 경쟁력이 필요한 카카오페이증권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카카오페이증권은 카카오페이의 자회사로 증권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아직 규모가 크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카카오페이가 시버트를 인수했다면 미국 주식에 대한 국내의 높은 수요에 대응, 카카오페이증권과 함께 시너지를 내며 다양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카카오페이의 목표가 결제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금융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로 해외 주식 거래 솔루션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버트 인수 무산은 더욱 뼈아플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시버트와 협력은 계속

다만 카카오페이가 빈 손으로 딜을 무산시킨 것은 아니다. 일단 시버트 측에서 계약 파기를 통지한 만큼 이에 따른 합의금 500만 달러를 받을 예정이다. 우리 돈으로 65억원에 해당한다. 시버트는 내년 3월부터 2026년 6월 30일까지 10개 분기에 걸쳐 카카오페이에 합의금을 낸다.

또 카카오페이가 이미 2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경영 참여권이 보장된다. 시버트 이사회 구성원 자격을 유지해 경영에 관여, 카카오페이와 지속적 협력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시버트 대표이사(CEO)인 존 J. 게비아(John J. Gebbia)는 “카카오페이가 시버트의 주요주주로 남고자 하는 것은 시버트의 현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카카오페이와 함께 계속 일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가 시버트 인수를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미 200억원 넘는 돈을 들여 상당한 지분을 보유한 데다 경영 참여권도 보장된 만큼 사법리스크가 해소된다면 다시 지분 인수 기회를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CEO는 “카카오페이가 시버트에 투자한 시간과 자원을 인정해주듯 빠르게 합의할 수 있어 기쁘다”며 “시버트에 대해 전략적 투자를 지속하고 협력해 사업성장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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