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0억원 어치 빚을 진 어떤 사람이 채권자 앞에 엎드려있다. 빚 갚을 돈이 없어 감옥에 들어갈 처지였던 그 사람은 그 앞에 무릎 꿇고 조금만 기다려달라 간청했다. 채권자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해주기로 했다.
#2. 그러나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가 자기에게 100만원 빚진 동료를 찾아내 멱살을 잡았다. 동료도 그에게 애걸했지만 그 사람은 동료를 때리며 용서하지 않았다. 이를 본 채권자는 화가 나서 100억원어치 빚진 사람이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뒀다.
성경 속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일화를 취재 중 현실에서 봤다. 외국 대기업과 국내 대기업, 그리고 국내 중소기업 사이에서다.
경위는 이렇다. 대기업 A가 중소기업 B와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B기업은 A기업 사업본부와 협의를 거쳐 관련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계약건을 오픈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은 뒤였다.
하지만 보도자료가 기사화되고나서 A기업의 태도는 180도 변했다. A기업 측은 자사 사업본부가 홍보팀과 논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채 보도자료 배포를 결정했다며 대외비 이슈를 거론했다. A기업 내부 소통 부재의 결과였다.
반면 책임은 B기업이 졌다. A기업은 B기업 대표를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혔다. B기업 대표는 보도자료 배포일 이후 나오는 어떤 기사에서도 A기업 이름이 언급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재발방지대책 서류에 서명을 했다. 이를 어기면 계약해지도 감수하겠다는 서명이다.
이 때문에 B기업은 기존 보도자료 기사가 버젓이 온라인에 남아있는데도 후속기사가 나올 때마다 일일이 해당 언론사를 컨택해 기업명 노출 수정 부탁을 해오고 있다. 기사 수정이 딜레이되면 A기업 구매팀은 계약해지를 운운하며 B기업의 멱살을 잡았다.
역설적이게도 A기업은 외국 대기업 C의 주요 부품 공급사다. A기업의 분기별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A기업 실적의 일등공신인 C기업 이름이 거론된다. 이들 또한 대외비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지만 기사마다 C기업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있다.
A기업은 C기업으로부터 버는 매출액이 전체의 4분의 3에 달한다. 만약 C기업이 A기업에 대해 대외비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올해부터 하도급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하도급 대금과 지급 수단, 기간 등을 의무공시하고 있다. 기업 ESG 차원에서도 상생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는 때다. A기업의 모습에서 역행을 느낀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