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발발했을 때 해운업은 장기 침체로 허덕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팬데믹 충격까지 더해졌으니 되는 일이 없는 듯했다.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해운업에도 공급망 연쇄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흘렀다. 되레 물동량이 급등하면서 시장은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일각에선 컨테이너 운송에 또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이 찾아왔다며 장기 전망을 낙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같던 호황은 금세 막을 내렸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올 들어 급락했으며 물량 확보 경쟁도 치열해치고 있다. 코로나가 이끌었던 부흥이 이제 끝물에 다다랐다.
◇머스크 "물동량 먹구름 꼈다"…관건은 비용 통제 머스크는 올해 2분기 매출로 129억달러, 상각전영업이익(EBITDA) 29억달러, 세전영업이익(EBIT) 16억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0%와 72%, 82%가 급감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분기 실적을 크게 웃돌긴 했으나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파른 하락세로 전환한 모습이다.
이미 작년부터 머스크는 '수평선에 먹구름이 걸쳐 있다'고 걱정해 왔다. 해상 운송량이 차츰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갇혀 있던 시기 소비자들은 TV와 책상, 소파 등 부피가 큰 제품을 줄줄이 샀지만 일단 구매하면 몇 년은 바꿀 필요가 없어진다. 머스크는 물동량 감소를 소비자들이 전처럼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을 것이란 신호이자 화주들이 이미 재고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위기를 감지한 머스크는 작년 11월 트레이딩 업데이트를 통해 "지난 3개월 운임이 피크를 찍은 뒤로 수요가 줄고 공급망 이슈가 해소되면서 운임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에너지위기,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다가올 경기침체가 소비자 구매력을 약하게 할 것이고 결국 글로벌 운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분석의 여파로 머스크 주가가 7% 이상 미끄러지기도 했다.
스스로 주가를 끌어내린 셈이지만 올해의 부진한 실적을 보면 경고는 유효했다. 게다가 앞으로 시장은 더 나빠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해운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운임은 같은 해 고점보다 약 80%나 낮아졌으며 현재 2010년대 평균 수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를 계기로 해운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다고 말하던 목소리도 이제 쑥 들어갔다.
특히 문제되는 부분은 물동량이 줄어드는 마당에 화물을 실어나를 배는 대폭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선박 중개업체 브리마르(Braemar)는 올해 상반기 신조 선박 인도량이 이미 기록적인 수준이었으며 2023년 전체 인도 규모는 230만TEU로 증가, 내년에 또 290만TEU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상 최고 수치인 데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선박 인도량의 2배를 넘는다. 수요는 약해졌는데 공급만 끊임없이 불어나는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머스크는 올해 실적 가이던스로 EBIT 35억~50억달러와 EBITDA 95억~110억달러를 제시, 지난 발표보다 하한선을 15억달러씩 상향 조정하면서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실적 전망을 올려잡은 것은 업황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비용관리 의지에서 나왔다.
머스크의 빈센트 클럭(Vincent Clerc) 최고경영자(CEO)는 "시장 침체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이고 대응을 위해선 비용 통제가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HMM, 사후적 대처 한계…매각 향방은 국내의 경우 해운산업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후적 대응에 그쳤다는 아쉬움을 지닌다. 실제로 머스크를 포함해 주요국 해운사들은 저운임, 저선가 시기에 중고선을 도입하는 등 선복량을 전략적으로 확대해 시장 점유율을 늘려왔다.
반면 HMM 등 국내 해운사들은 운임과 선가가 비쌀 때 배를 대거 발주하거나 장기용선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경기가 안좋아질 경우 해운업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한계가 있었다. 경기역행적 투자를 하지 못한 것도 기업 내부적 요인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정부지원 부족 등 외부원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최대 1조원 규모의 위기대응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국적선사에 부실 징후가 있을 때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을 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해운산업은 선박을 투자자산보다는 운항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주요 해운국들에 비해 선임과 운임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배를 투자자산으로 인식하고 선박매매(S&P) 활성화 등을 통해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HMM은 시기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애매한 처지에 놓여 있다. 회사에 주인이 없다 보니 방향을 과감히 설정하기 어렵다. 가라앉은 업황은 HMM 매각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면을 보면 LX그룹, 하림그룹, 동원그룹, 독일 하팍로이드의 4파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딜 성사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 관측이 적지 않다. 하팍로이드의 경우 HMM이 국적선사인 만큼 해외기업에 팔아선 안된다는 반발이 나왔고 나머지 원매자들은 자금력이나 사업구조 측면에서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HMM으로선 매물로서의 매력을 어필해야 하는데, 업황 부진을 인정하면서도 수익률은 선전 중이라는 입장이다. HMM은 올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2조1300억원, 1602억원에 그쳤다. 작년 동기 대비 각각 94%, 58%가 급감했고 당기순이익 역시 89%가 줄어 3128억원을 나타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 영업손실을 냈던 것을 감안하면, 초대형선 투입 등으로 체질 개선을 함으로써 수익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HMM은 "컨테이너 부문은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 상존, 소비시장 회복 지연 등으로 급격한 공급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수급 변화에 맞춘 운송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사업다각화와 신규수익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