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어 이차전지"라며 시장 한구석에서 남몰래 한탄하던 기업들이 황급히 움직이고 있다. 그 행선지는 분리막 너머의 '음극재'. 배터리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으로 크진 않지만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라 수요가 탄탄하다. 블루오션이기도 해서 꿈틀거리며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어쩌면 간절한 변신을 꿈꾸는 많은 회사들의 이야기, 언젠가 '진짜'와 '가짜'로 판가름 날 검증의 현장이다. 승기는 누가 잡을 수 있을까. 시장의 사정과 주요 플레이어들을 더벨이 집중 조명해 본다.
엘앤에프의 고민은 한결같다. 양극재로 한정돼 있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른 소재로 넓혀 사업 다각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엘앤에프가 꺼내든 카드는 차세대 음극재다. 차별화된 소재 생산 노하우를 앞세워 무주공산인 차세대 음극재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양극재 한 우물을 넘어 차세대 음극재에서도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사업 다각화 자체로도 의미
엘앤에프 역사에서 올해는 큰 변곡점이다. 양극재 생산을 위해서만 노력해오다 리튬, 전구체 등 주원료에 대한 수직 계열화를 본격화한 게 올해 들어서다.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엘앤에프는 지난 6월 일본 미쯔비시케미컬과 음극재 공급망 강화를 위한 차세대 음극재 사업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미쯔비시케미컬은 일본의 대형 화학사로 이차전지 소재인 전해액과 음극재를 생산한다.
음극재 사업은 '천연흑연계'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기존 천연흑연 음극재의 단점인 부피 팽창 문제를 해소할 기술력을 가졌다는 평이다. 엘앤에프는 이 기술로 천연흑연의 가격 경쟁력은 높이고 인조흑연의 기술은 넘는 제품 개발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아직은 모두 구상에 지나지 않는다. 양사의 합작법인은 한국에 세워질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투자 규모나 시점은 더 확인돼야 한다. 미쯔비시케미컬의 천연흑연 음극재 기술을 합작법인이 어떤 방식으로 제품화할 것인지도 두고 봐야 할 대목이다.
사업 다각화 자체로도 의미는 있다. 엘앤에프는 포스코퓨처엠 이후 양극재 회사가 음극재 시장에 진출한 보기 드문 사례다. 양극재 생산 및 판매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던 사업 구조상 새로운 수익처에 대한 안팎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아직 합작법인의 협력 방식이 다 공개된 건 아니다"라며 "기술력은 미쯔비시케미컬이 공유하는 대신 양극재 제조에 높은 이해도를 가진 엘앤에프가 시설 투자 전반을 제공하는 형태로 협력이 이뤄지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우선순위에선 가장 밀려…초기 시장이라는 점은 위안
문제는 '우선순위'다. 현재 엘앤에프는 앞으로 3년 동안 총 5조원의 자본적지출(CAPEX)을 계획해 둔 상황이다. 투자 대상은 음극재 외에도 리튬, 전구체, 양극재가 있다.
투자가 가장 시급한 분야는 양극재다. 지난해 엘앤에프의 양극재 연간 생산능력은 약 9만톤(t)이다. 통상 생산라인을 확충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양극재 1만t당 1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단순 계산으로 '2026년 40만t 생산' 목표까지 약 3조원이 더 필요하다.
그다음으로 보게 될 곳은 핵심 광물 '리튬'과 중간재인 '전구체'다. 그간 원재료 내재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은 엘앤에프 주가의 주된 할인 요소였다. 실제 올 들어 엘앤에프의 주가 상승률(22%)은 수직 계열화가 보다 더 탄탄한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보다 낮은 상황이다.
엘앤에프는 지난 6월 LS그룹과 합작법인(LS-엘앤에프 배터리솔루션)을 세웠다. 1조8402억원을 투자해 2029년 12만t의 전구체 생산능력 확보를 추진한다. 올 3월엔 중국 시노리튬과 JV 설립을 발표, 탄산리튬을 수산화리튬으로 전환하는 제련 사업에도 진출했다.
결국 한정된 곳간 사정에서 바라볼 때 차세대 음극재 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차세대 음극재 시장 자체가 아직 초기 상황이라는 점은 돈 들어갈 곳이 많은 엘앤에프에게 위안거리라는 분석이다.
음극재 업계 관계자는 "엘앤에프에게 음극재 사업은 사실 배터리 소재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라며 "차세대 음극재는 수요가 탄탄해 진출 선언만으로도 시장에 긍정적 이미지를 주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