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주주 전성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투자 규모가 작은 소액주주를 소위 '개미'로 불렀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들은 기업 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기업공개(IR), 배당 강화, 자사주 활용 등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책에 힘주고 있다. 더벨이 기업의 주주 친화력(friendship)을 분석해봤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업들은 이사회 내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안건을 심의하는 소위원회를 잇따라 설치하며 ESG 역량 강화를 향한 의지를 알렸다. 그러나 다수의 위원회들이 제한적 권한만을 보유하며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뒤따르고 있다.
한진칼 역시 이사회 내에 'ESG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다만 한진칼의 ESG경영위원회는 여타 기업들의 ESG위원회와는 달리 주요 경영안건을 사전에 심의하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주권익의 침해를 막는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한진칼에 따르면 ESG경영위원회는 ESG 관련 경영사항에 대한 검토 및 심의권뿐만 아니라 내부거래 심의 의결권,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안건 중 주주가치에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한 사전 검토권 등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주주가치 영향 사안에는 회사의 합병 및 분할, 중대한 자산 및 영업의 양수도 등 재무적 경영안건도 포함된다.
ESG업계에서는 한진칼 ESG경영위원회가 다른 기업들의 ESG위원회와 가장 차별화된 지점이 바로 주주가치에 영향을 주는 사안의 사전 심의권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여타 기업들이 운영 중인 ESG위원회는 대체로 사업기간 중의 ESG 관련 안건을 보고받고 심의하는 데에 그친다. 반면 한진칼의 ESG경영위원회는 ESG 관련 안건은 물론이고 주요 경영사안까지 사전에 검토함으로써 주주권익을 훼손할 여지가 있는 안건을 필터링한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한진칼은 진에어 지분 54.91%를 대한항공에 매각해 6048억원을 확보하는 안건이나 칼호텔네트워크를 위한 2000억원 규모의 자금보충약정을 맺는 안건, 자회사들과의 상표권 사용료 변동안건 등 재무적 영향력이 적지 않은 안건들을 이사회를 통해 처리했다.
그리고 이 안건들은 모두 이사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기에 앞서 ESG경영위원회의 사전 검토를 거쳤다. 실제 한진칼 이사회의 주요 의결사항 및 내역을 살펴보면 안건을 결의하는 이사회가 열린 날짜보다 늦어도 하루, 빠르면 4일가량 앞서 ESG경영위원회가 먼저 해당 안건을 살펴봤다.
주주친화정책 역시 ESG경영위원회의 사전 검토 대상이다. 올해 한진칼 이사회가 직전 사업연도의 현금배당안을 승인하기에 하루 앞서 ESG경영위원회가 이를 먼저 검토했다. 지난해 한진칼이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나선 것도 ESG경영위원회를 거쳐 진행됐다. 한진칼 ESG경영위원회는 경영 전반의 감시자로 기능하며 주주권익을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한진칼 ESG경영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권한은 조직이 꾸준히 확대 개편된 데에 따른 것이다. 한진칼은 2019년 11월 내부거래 심의 의결권을 보유한 조직인 내부거래 위원회에 주주가치 영향 사안에 대한 사전 검토권을 추가로 부여해 거버넌스 위원회로 확대했다.
한진칼은 2021년 2월 지분 10.66%의 5대 주주 산업은행으로부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이사회의 동일 성별 구성 금지 △이사회 내 ESG위원회 설치 등의 주주제안을 받았다. 이를 수용해 2021년 4월 거버넌스 위원회를 ESG경영위원회로 재차 개편하고 ESG 관련 안건의 사전 검토 권한까지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ESG위원회가 강력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대표이사, 혹은 사내이사가 위원회에 소속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진칼 역시 거버넌스 위원회의 설립 초기에는 석태수 전 대표이사가 4명의 구성원 중 1명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내부거래 위원회 시절부터 이어 온 인력 구성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2020년 거버넌스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전원 사외이사로만 구성돼 독립성을 확보한 상태였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2023년 1분기 말 기준으로 한진칼 ESG경영위원회는 주순식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김효권 사외이사와 최윤희 사외이사가 위원을 각각 맡는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주 사외이사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장감시본부장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 김 사외이사는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 출신의 시장감시 분야 전문가, 최 사외이사는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내는 법률 전문가로 각자의 전문 영역이 모두 다르다. ESG경영위원회가 한진칼의 주요 경영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리스크를 사전 검토할 수 있도록 한 인력 구성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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