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급변하는 사업 환경과 시장선도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 이 가운데 미래수익 창출 가능성이 인정된 부분은 자산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은 비용, 수익창출 효과가 기대이하인 부분은 손상 처리된다. 더벨은 R&D 지출 규모와 회계처리를 통해 기업의 연구개발 전략 및 성과를 들여다봤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영악화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연구개발(R&D) 투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다만 무형자산으로 분류하는 개발비는 3년째 제로(0)에 멈춰 있다. 자산화에 기존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다.
대우조선해양의 보수적 회계처리는 추가 손실이 발생할 여지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자산화가 가능할 만큼 유용한 R&D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사 대비 미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은 2022년 연구개발비용이 745억37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2017년 이후 5년 연속으로 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 기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0.4%에서 1.5%까지 높아졌다. 매출이 2017년 11조1018억원에서 2022년 4조8602억원까지 쪼그라든 탓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경영악화에도 불구하고 조선업계의 기술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눈에 띄는 것은 연구개발투자가 증가하는 반면 개발비 처리, 즉 R&D 결과물의 무형자산화는 줄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R&D 자산화율은 2017년 11.1%로 두 자릿수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2020년부터는 3년째 0%다. 2019년에는 개발 완료한 프로젝트의 자산성이 인정되지 않아 해당 투자금액 18억원이 비용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연구개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연구개발 단계에서 발생한 지출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기 위해 6가지의 감사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가 언급한 6개 요건은 ①무형자산의 기술적 실현가능성 ②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의도 ③무형자산을 사용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④무형자산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 ⑤무형자산의 사용 및 판매에 필요한 기술적 재정적 자원의 입수 가능성 ⑥무형자산 관련 지출을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등을 모두 제시하는 것이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충족하지 못한다면 연구개발비가 그대로 비용으로 인식된다.
원래 대우조선해양의 연구개발비 무형자산화는 △기술적 실현가능성 △미래경제적 효익 등 2가지 인식요건만의 충족을 통해 이뤄져 왔다. 필요조건이 6가지로 늘어난 것은 2020년부터다. 즉 대우조선해양은 R&D 성과의 자산 인식요건이 엄격해진 이후로 자산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연구개발비의 자산화가 멈춘 데에는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무형자산은 최초 자산 인식 이후 일정 기간 상각이 이뤄지며 그에 따른 손상차손은 비용으로 처리돼 영업이익을 갉아먹는 요인이 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영업이익이 2018년 1조24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 1534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심지어 2021년과 2022년에는 영업손실을 1조7547억원, 1조6136억원씩 각각 기록했다.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당장 개발비를 자산화하지 않는 것이 추후 손상차손 인식 여지를 없앤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일 수 있다. 실제 이와 같은 '보수적 회계처리'의 관점에서 R&D 성과의 자산 인식요건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투자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 기간 대우조선해양이 연구개발실적을 쌓지 못한 것은 아니다. 2020년에는 잠수함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 2021년에는 스마트십 솔루션의 운항 최적화기능 개발, 2022년에는 극저온 화물창 및 연료탱크 개발 등 여러 성과가 사업보고서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들이 결국 자산으로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은 R&D 투자의 효율성에 의문부호가 따라붙을 여지이기도 하다.
실제 2020~2022 3년 동안 경쟁사들의 R&D 성과를 살펴보면 한국조선해양은 598억원, 삼성중공업은 137억원의 무형자산화가 이뤄졌다. 이들이 대우조선해양보다 더 유용성 있는 성과들을 창출해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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