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최근 SK텔레콤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 투자'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했다. 통상 적극적으로 주주 권한을 행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차원에서 일반 투자를 보유 목적으로 하는 것과는 반대 움직임이라 눈길을 끈다.
이는 최근 '소유 분산 기업' KT 지배구조를 흔드는 모습과는 비교된다. 국민연금은 경선의 룰이 불공정하다며 딴지를 걸어 재경선을 펼치도록 유도했다. KT는 요구대로 공개 경쟁 끝에 CEO 후보를 선출했지만 정권 눈치를 보는 국민연금이 결국 여기 반대표를 던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민연금, 3년 만에 SKT 투자 목적 변경
국민연금은 최근 공시를 통해 지난 13일 자로 SK텔레콤 주식 1694만299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전 보고서인 작년 6월 8일 기준으로는 1648만5854주를 갖고 있었는데 소폭 늘어났다. 지분율로 따지면 7.53%에서 7.74%로 상승했다.
이와 더불어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 투자'에서 '단순 투자'로 변경한 게 눈에 띈다. 앞서 2020년 2월 국민연금은 SK텔레콤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그로부터 약 3년여 만에 보유 목적을 다시 바꾼 것이다.
통상 국민연금이 보유 목적을 일반 투자로 바꾸는 건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암시하는 행보로 해석된다. 투자 목적이 일반 투자일 경우 배당이나 임원 보수 등 보편적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주주 활동을 하도록 돼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투자 목적을 이와 반대로 바꾼 만큼 지분은 늘렸지만 비교적 소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소유 분산 기업을 겨냥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예고한 바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명분으로 지배구조 개입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최근에도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후보자 선임안에 반대를 결정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의 경우 최대 주주가 SK㈜로 작년 말 기준 30.0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이 이미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작년 말 S&P Global이 지속가능성을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DJSI 월드 지수에도 14년째 편입됐다.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2500대 기업을 평가하는데 그중 ESG 성과가 상위 10%에 들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최장기간에 해당한다.
한국ESG기준원(KCGS)이 평가하는 ESG 통합 등급 역시 10년 전부터 'A~A+'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거버넌스 부문만 따로 떼놓고 봐도 2014년부터 'A~A+' 등급을 꾸준히 수성했다.
◇소유분산기업 KT에는 과도한 개입…국내외 자문사 CEO 선임 찬성에도 반대 의결?
이번 국민연금의 행보는 최근 KT를 대하는 태도와는 유독 대조된다. 국민연금은 여전히 KT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하고 있다. 아울러 작년 말 기준으로 10.12%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다.
앞서 국민연금은 작년 12월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 연임을 결정하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이사는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KT는 지난 경선을 무효화하고 지난달부터 공개 경쟁 방식으로 CEO 선임을 재추진했다. 회사 안팎에서 총 34명의 후보자가 올랐는데 구 대표는 도중하차를 선언했다. 아울러 외부 인사들로 꾸려진 인선 자문단이 후보군을 평가해 이사회가 최종 후보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사장을 선정했다.
하지만 범여권에서는 KT가 친정권 인사를 CEO로 뽑지 않아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오는 31일 KT 주주총회에서 윤 사장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실 국민연금으로서는 반대표를 던질 명분은 없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윤 후보자 선임에 찬성을 권고하며 힘을 실었다. 국내에서도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기업연구소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그의 선임에 찬성 의견을 낸 상황이다. 소액 주주들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찬성표를 결집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시가총액이 큰 대기업 중심으로 지분 5~10% 정도는 갖고 있는데 종종 투자 목적 변경을 통해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의지를 보여주곤 했다"며 "SK텔레콤과 KT 투자 목적이 달라진 건 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