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콜로 진행하는 기업설명회(IR)의 백미는 기업 관계자와 시장 관계자 사이에 오가는 질의응답(Q&A)이다. 투자자를 대변하는 시장의 관심이 무엇인지 드러나고 기업 입장에서 되도록 감추고 싶은 속살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자사 홈페이지에 IR 자료와 음성파일을 올릴 때 Q&A 부분만 제외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THE CFO가 IR의 백미 Q&A를 살펴본다.
대개 상장사들의 실적발표 기업설명회(IR)는 오전 9시와 오후 5시 사이에 이뤄진다. 최근 실적발표 IR을 기준으로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은 오전 10시에 개최했고,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한 현대자동차는 오후 2시10분에 열었다.
◇오는 23일 이후 IR '다시듣기' 불가능
이 시간대의 문제점은 최근 급증한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원인 투자자도, 자영업자인 투자자도 해당 시간대에 한 시간 이상 진행되는 실적발표 IR에 참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까닭에 많은 기업이 자사 홈페이지에 실적발표 IR에서 다뤄진 정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사후에 PDF 파일이나 음성 파일로 실적발표 IR 전문을 공개한다.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 등도 정보 제공 면에서 예외가 없도록 홈페이지에 실적발표 IR 음성 파일을 게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화솔루션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후에 실적발표 IR을 음성파일로 공개하지만 공개기간은 '단 일주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열린 한화솔루션의 2022년 4분기 실적발표 IR에 참여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23일 이후에는 실적발표 IR에서 다뤄진 내용을 증권사 리포트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다.
다른 대형 상장사들, 이를테면 삼성전자는 5년도 전에 일어난 실적발표 IR의 음성파일을 제공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월 상장 후 개최한 모든 실적발표 IR의 음성파일을 제공하는 점과 대비되는 정보 공개 정책이다. 현대차도 정보 공개 기간이 길다.
다만 한화솔루션이 1시간 가량 진행하는 실적발표 IR에서 질의응답에 할애하는 시간은 50분이 넘는다. 전체 시간의 80% 이상을 시장 관계자들과 소통에 쏟는 셈이다.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점이다.
◇시장 주목도 높아진 이유 두 가지
한화솔루션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시장에서 주목하는 기업이다. 하나는 한화그룹 지배구조와 사업 재편의 한 축이라는 점이다. 이달 1일 기준 한화솔루션 4명의 대표이사 가운데 한 명이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전략부문 대표다.
김 부회장은 향후 한화그룹의 여러 사업 중 에너지와 방산, 조선 등을 맡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를 위한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한화솔루션의 첨단소재 부문을 물적분할해 지분 일부를 매각한 데 이어 갤러리아 부문을 인적분할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그룹 내 방산사업을 모두 편입시키는 등의 작업이 그 예다. 향후 '김동관 한화'의 핵심 계열사가 될 곳이 한화솔루션이라는 뜻이다. 시장의 관심도가 클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한화솔루션은 글로벌 정세에 큰 영향을 받는 태양광을 비롯한 에너지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과 유럽은 보호무역주의 입각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가령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의 '핵심 원자재법(CRMA)' 등이다.
두 법안의 공통점은 역내 공급망 내에서 원자재를 수급해 생산한 제품에만 혜택을 준다는 점이다. 최근 열린 실적발표 IR에서도 IRA와 CRMA 등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한화솔루션 실적에 미치는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아직 시행되지 않은 CRMA보다는 IRA 시행에 따른 영향을 묻는 말이 많았다. 한화솔루션은 2024년 12월까지 3조2000억원을 들려 미국 내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핵심 밸류체인의 생산기지를 미국에 두게 되는 회사는 수조원에 달하는 세액공제를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IRA로 몰래 미소짓는 한화솔루션?
IRA 수혜 효과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실적발표 IR에서 "IRA 보조금 영향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몇 개월 내로 제3의 기관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IRA든 CRMA든 정책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저희가 집중하는 시장에 있는 기회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조심스럽지만 IRA와 CRMA 등 미국과 유럽 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정책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점을 완곡하게 밝힌 셈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러한 정책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태양광 밸류체인의 업스트림 쪽을 과점하는 중국 업체들이기 때문이다.
태양광 밸류체인은 크게 '잉곳→웨이퍼→셀→모듈'이다. 한화솔루션의 현 강점은 다운스트림에 해당하는 셀과 모듈에 있다. 잉곳과 웨이퍼는 중국 업체들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IRA 시행, 그리고 한화솔루션의 미국 통합 생산기지 구축으로 잉곳과 웨이퍼 등 업스트림에서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회사 측이 최근 실적발표 IR에서 이뤄진 질의응답에서 지속해서 확답은 피하면서도 긍정적인 뉘앙스의 답변을 내놓은 배경이다. 하지만 23일 이후에는 실적발표 IR 전문을 접할 수 있는 음성 자료가 사라지기 때문에 회사 측 입장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된다.
지난해 한화솔루션은 연결기준 매출 13조6539억원과 영업이익 966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27.3%, 30.9%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회사 측은 올해 정확한 가이던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지만, 증권가에선 올해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하되 영업이익은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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