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주력하는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생산)은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루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사업 수주를 위한 파트너사가 큰 차이가 없고 화장품 원료의 개발과 생산 기술 역시 양사가 비슷하다. 그 결과 오랫동안 두 회사는 비슷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유지해 왔다.
현재도 주력 사업이 화장품 ODM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지만 미래 동력을 위한 넥스트 전략에서는 명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한국콜마가 신사업 진출을 통한 다각화를 선택했다면 코스맥스는 주력 사업인 화장품 ODM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콜마의 경우 제약과 HB&B사업 강화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창업주인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이 대웅제약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색하지 않은 선택이다. 코스맥스는 글로벌 법인(생산설비 포함)을 늘리며 화장품 ODM의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한국콜마, 제약 진출 선봉장 'HK이노엔'
한국콜마가 제약과 HB&B 영역으로 사업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에는 HK이노엔(옛 CJ헬스케어) 인수가 있다. 1984년 제약 사업을 시작한 HK이노엔은 2014년 CJ제일제당에서 물적분할하며 설립됐다. 이후 2018년 한국콜마에 인수됐고 사명 변경과 코스닥 상장을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HK이노엔 인수는 윤동한 회장의 장남인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부회장이 주도했다. 후계자로써의 경영능력을 증명하는 동시에 윤 회장이 강조해온 제약과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의 '융합기술'을 실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부친이 한국콜마의 기반을 다졌다면 성장 동력 발굴을 통한 미래 경영은 장남에게 맡겼다는 얘기다.
지분 확보를 위해 투입된 자금은 1조3100억원 규모다. 대규모 인수 자금이 필요했던 만큼 한국콜마는 외부 투자자와 손을 잡았다. 당시 한국콜마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와 미래에셋자산운용PE, 스틱인베스트먼트 등과 4자 컨소시엄을 꾸렸다. 이후 자회사인 CKM을 통해 HK이노엔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콜마는 CKM에 3600억원을 출자했다. 재무적투자자(FI)들은 CKM이 발행한 35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투자했고 한국콜마는 나머지 6000억원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다. 2020년 HK이노엔이 CKM을 흡수합병했고 한국콜마는 자연스럽게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다만 HK이노엔은 2022년 말 3분기 기준으로 지분율이 50%를 넘지 못해 자회사는 아니다. 상장에 따른 유상증자(공모주 유입) 영향으로 지분율이 43.01%(자기주식 고려한 유효지분율)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율이 낮고 넓게 분산돼 있어 한국콜마는 HK이노엔을 실질적인 지배력을 보유한 종속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HK이노엔은 현재 신약개발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HK이노엔 연구조직은 R&D총괄 송근석 전무의 지휘 아래 크게 신약, 바이오, 제품개발연구소로 구성돼있다. 최근에는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세포치료제 분야에 진출해 자체 연구와 CDMO, CMO사업도 진행 중이다.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의 사용범위 확대연구와 더불어 염증과 만성질환, 항암분야 신약, 바이오의약품을 중심의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코스맥스 '글로벌 화장품 OBM' 도전장
코스맥스는 한국콜마와 달리 화장품 ODM 사업을 확장 중이다. 그룹 차원에서는 한국콜마처럼 제약·헬스케어(건강기능식품 등)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코스맥스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대신 화장품 ODM 사업을 OBM(제조업자 브랜드 개발·생산)까지 발전시키며 한 우물 전략에 힘쓰고 있다.
화장품 OBM과 ODM의 큰 차이는 브랜드 개발이다. ODM의 특징인 화장품의 원료 개발과 생산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업이다. 쉽게 말해 코스맥스가 화장품 제조·개발부터 브랜드 개발과 컨설팅 영역까지 지원하는 사업 형태다. 소규모 브랜드 화장품 업체 입장에서는 검증된 기술력 등을 토대로 시장 진입을 위한 허들을 낮출 수 있다. 제조사 역시 글로벌 진출과 같은 신시장 개척에 강점을 지닌다.
실제 코스맥스는 해외 영토 확장에 OBM 사업 모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주요 거점 국가에 구축한 생산 공장을 통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화장품 제조 단일 사업이지만 지역과 거래처를 다변화해 외형을 키우고 있는 게 핵심이다. 나아가 단일 사업에 따른 사업 리스크 분산 효과도 꾀하고 있다.
2004년 상해법인 설립 이후 2013년 광저우와 미국, 2014년 인도네시아, 2017년 태국, 2021년 일본 등으로 영토를 넓혔다. 그 결과 2022년 3분기 누적 기준 지역별 매출 비중은 국내 59%, 아시아 40%, 미국 11% 등이다. 다만 아시아 매출 비중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어 나머지 국가의 해외사업 이익기여도는 높지 않다.
코스맥스는 편중된 해외 사업 매출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제외한 국가의 성장에 힘쓰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올해 생산설비 준공과 현지 고객사 확보에 돌입했다. 생산시설의 경우 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도쿄 외곽 이바라키현 반도시에 건립할 예정이다. 지난해 1만6000㎡ 규모의 용지를 계약했으며 올해 상반기 중 착공에 들어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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