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SM엔터테인먼트보다 선진적인 이사회를 찾아보기 어려울 거다. 큰 회사가 사외이사를 여럿 뽑아도 '거수기'에 불과한 반면 SM엔터테인먼트는 다르다. 독립적인 인물들이 이사회에 참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만큼 모범적인 사례가 될 거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이사가 말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2021년 초 설립돼 역사는 짧지만 자본시장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약 1년 간 공개 주주 캠페인을 벌인 끝에 이사회 입성에 성공했다. 얼라인파트너스가 추천한 인물이 SM엔터테인먼트 감사에 선임된 데 이어 이 대표가 직접 기타비상무이사로서 이사회에 참여한다.
SM엔터테인먼트같은 일반 기업이 주주의 요구를 온전히 들어준 사례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미국 투자자 칼 아이칸이 KT&G 이사회에 1석을 차지한 적은 있지만 얼라인파트너스는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창의성 등 SM엔터테인먼트의 고유DNA는 해치지 않은 채 기업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내부거래 리스크를 해소하고 임직원에게 적절한 보상체계를 도입함으로써 SM엔터테인먼트 임직원과 이해관계자, 주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장기 파트너로 성과보상체계·내부거래 개선…임직원·주주 ‘윈윈’“SM엔터테인먼트가 이사회를 통해 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선진적 제도를 도입할 거다. 경영목표 설정부터 성과보상체계, 내부거래 문제까지 모두 뜯어볼 예정이다. 내부거래 문제도 중요하지만 성과보상체계 개선에도 주목하고 있다. 유능한 인재에게 동기를 부여해서 주주가치를 제고하려면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 입성해 가장 먼저 어떤 개선할 지점을 묻자 이 대표는 성과보상체계에 주목한다고 답했다. 이 대표가 보기에 SM엔터테인먼트는 지금껏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 등 최대주주의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경영권을 포기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임직원 보상이나 소액주주들의 권익은 무시돼 기업가치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이사회 개편에 공을 들인 배경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곽준호 전 KCF테크놀러지스(現SK넥실리스) CFO를 SM엔터테인먼트 감사로 선임시키는 데 성공했고 올해 주총에서는 기타비상무이사에 이 대표가 선임될 예정이다. 임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도 얼라인파트너스가 추천한 이남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객원교수가 참여한다.
그리고 사외이사 등만 참여하는 구조로 이사회 내에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이 대표가 KKR에서 일한 경험이 우러나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골드만삭스 투자은행부문의 애널리스트로서 국내외 M&A거래를 자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2012년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KKR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는 KKR에서 2021년까지 프라이빗에쿼티(Private Equity) 담당으로서 오비맥주, 티몬, LS오토모티브, KCFT 등 투자에 참여했다. 이런 경험은 성과보상체계 등 거버넌스 이슈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이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고 오직 회사의 발전만을 위해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얼라인파트너스의 역할”이라며 “짧게는 3~5년에서 길게는 영구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라면 계속해서 좋은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 행동주의는 전략일 뿐, 기업가치 제고가 궁극적 목표”얼라인파트너스와 SM엔터테인먼트이 사례는 자본시장에서 상징성이 크지만 얼라인파트너스에게도 의미가 깊다. 설립한 지 2년 만에 국내 처음으로 기업이 주주의 요구를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촉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만큼 위상도 제고됐다. 이 대표는 “과거와 달리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자문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많이 찾아온다”며 “비공개 주주 캠페인을 벌이는 기업에서도 우리의 말에 훨씬 더 귀기울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얼라인파트너스를 주주행동주의 펀드로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바라본다. 그는 “얼라인파트너스는 저평가된 우량기업에 장기투자하면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게 궁극적 목표이자 정체성”이라며 “공개주주캠페인이나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주주행동주의는 전략일 뿐이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를 눈여겨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21년 초 얼라인파트너스를 설립하고 그해 9월 우리은행과 SM엔터테인먼트 등에 투자했다. 투자하고보니 SM엔터테인먼트가 거버넌스 이슈로 기업가치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다고 판단해 2022년 초부터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주총 대결을 펼쳤다는 것이다.
얼라인파트너스가 SM과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 대표는 소액주주 권익 보호 등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주들이 투자소양이 개선된 영향도 컸다고 바라봤다.
그는 “과거였다면 1%의 지분으로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놓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겠지만 동학개미운동, ESG 열풍을 타고 주주들의 투자의식이 개선됐다”며 “시장환경이 바뀐 덕분에 얼라인파트너스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행동력의 차이도 짚었다. 이 대표는 "다른 기관투자자들은 대형 금융사 계열인 경우가 많아 제 목소리를 내고 적시에 행동하기 어렵다"며 "얼라인파트너스의 차별화 지점은 자유롭게, 실행력 있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며 앞으로도 계속 행동하는 투자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