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유한양행의 안살림을 이병만 부사장이 책임지면서 본격적으로 CEO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기존 CFO 업무를 담당하던 김재훈 전무는 ESG경영실로 내부 직무 이동이 이뤄졌다.
11일 THE CFO 취재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작년 10월부터 이 부사장에게 경영관리본부장 업무를 맡기고 있다. 유한양행 직제상 공식적인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는 없으나 관련 업무는 경영관리본부장이 책임진다. 무엇보다 유한양행의 핵심 비전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실행하는 투자관리팀이 경영관리본부 소속이다.
이 부사장은 2021년 3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1년6개월 만에 경영관리본부장 역할을 맡게 됐다. 그는 1986년 유한양행에 입사한 이래 37년 동안 근속한 유한맨으로 통한다. 그동안 다양한 자리를 거친 점도 특징이다. 임원으로 올라섰던 2015년부터 작년까지 영업기획부, 홍보, 약품사업본부 등을 총괄했다.
이 부사장의 커리어를 종합하면 유한양행 CEO로 가는 코스를 밟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CEO인 조욱제 대표(사장) 역시 승진 직전까지 경영관리본부를 이끌었으며 앞서 약품사업본부, 마케팅 등 여러 부서를 거쳤다.
창립 100주년에 가까워지는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업계뿐 아니라 산업 전반을 통틀어서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1926년 고(故) 유일한 박사가 세운 유한양행은 창업주 뜻에 따라 오너 일가는 경영에서 완전히 빠진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유 박사가 설립한 유한재단이 15% 남짓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지만 경영엔 관여하지 않는다.
1969년을 기점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도 완전히 자리잡은 상태다. 그해부터 현재까지 11명의 공채 출신 사장이 선임됐으며 조욱제 대표 이전의 10명의 CEO가 모두 중도하차 없이 임기를 채웠다.
사실상 차기 CEO 평가대에 오른 이 부사장의 주요 과제로는 R&D 투자 확대를 통한 회사가치 향상이 지목된다. 지난해 유한양행이 처음 공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도 핵심 경영 과제를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으로 설정했다.
유한양행은 글로벌 신약개발사로 거듭나기 위해 매년 외부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18년부터 작년까지 5년 연속 투자 순증 기조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9월 말까지 타법인 출자 순증가액은 651억원을 기록했다.
유한양행이 가동 중인 30개의 혁신신약과 19개의 개량신약 프로젝트 가운데 절반은 타법인 투자를 통해 확보했다. 2021년에는 오스코텍, 얀센과 협력해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 신약 '렉라자'를 출시하는 성과를 이뤘다. 올해도 신규 투자처를 발굴해 제2의 렉라자를 조기에 개발한다는 경영 목표를 세웠다.
유한양행은 최근 3년간 별도기준 평균 1조5500억원 안팎의 매출액을 기록 중이다. 이 가운데 10%가량을 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덕분에 2018년부터 현재까지 5건의 기술수출 성과를 올렸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