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성사된 롯데케미칼 '빅딜'의 주체는 동박업체 일진머티리얼즈였다. 인수 금액만 2조7000억원으로 2015년 업계를 달궜던 '삼성-롯데 화학사 빅딜' 때와 비슷한 규모다.
회사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수 있는 딜인 만큼 이번 딜로 롯데케미칼이 '얻은 것'과 '잃은 것'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드디어 발견한 신사업 활로, 삼성·LG 파트너십도 구축
일진머티리얼즈의 동박·전지박 수요처는 국내 배터리사들이다. 특히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중 삼성SDI와의 거래 관계가 짙다. 올해 초부터 진행되고 있는 일진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공장 증축 역시 삼성SDI의 현지 수요 확대가 주된 배경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SK넥실리스 외 다른 동박업체들에게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일진머티리얼즈의 동박 활로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터리 산업의 주요 소재 업체로서 삼성과 LG라는 파트너를 얻는 셈이다.
석유화학에만 치중됐던 롯데케미칼의 사업 포트폴리오도 이번 인수로 폭넓어질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제품들과 부타디엔, 스타이렌모노머 등 모노머 제품,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등 폴리머 제품 등 석유화학 관련 제품의 포트폴리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한 이후 ABS, PC 등 합성수지 비중도 높아졌지만 화학군을 벗어나 롯데케미칼의 실적을 떠받들 수 있는 신사업 군을 찾기 힘들었다. 이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그간 목말라했던 확실한 신사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올해처럼 글로벌 시황 악화로 석유화학이 부진할 때 동박 사업이 연결 손익을 메꿔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 연결 실적에 비하면 일진머티리얼즈가 내는 영업이익의 절대 규모가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향후 동박사업 성장 여부에 따라 든든한 안전판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매년 비교적 꾸준한 이익을 내고 있다. 2020년 509억원의 연결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작년에는 699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반기 기준 46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매년 9~10%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롯데케미칼의 연결 수익성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수가 2.7조…막대한 기회비용
일진 인수로 롯데가 내어줄 대가는 작지 않다. 우선 그간 이어져왔던 견조한 재무구조에 적잖은 균열이 예상된다. 이번 인수 규모는 2조7000억원으로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현금(상반기 말 별도 기준 1조8538억원)을 훨씬 상회한다.
인수 이후에도 일진머티리얼즈가 유럽과 미국으로 진출할 때 최소 1조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추가 출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조원에 육박하는 인수 금액 탓에 사업적인 기회비용도 크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인수 프리미엄이 약 100%일 정도로 롯데케미칼 내부에서 신사업 진출을 더 이상 머뭇거리면 안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신재생 에너지나 바이오 등 화학업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사업 분야와 기회가 다양한데 롯데케미칼의 선택은 동박이었다"고 말했다.
인수 이후 철옹성같았던 신용등급도 변화 가능성이 생겼다. NICE신용평가는 인수 발표 이후 롯데케미칼의 장기신용등급(AA+/안정적)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