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확정한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에 경고등이 켜졌다. 2조7000억원이라는 인수 대금에 더해 대규모 투자 자금까지 필요해 그룹 전반에 끼칠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일부 신용평가사에서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 그룹 계열사 등을 신용등급 하향검토 목록에 올렸다.
◇2차전지 사업 확대 2조7000억 '빅딜'...재무안정성 악화 불가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종속회사인 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LOTTE Battery Materials USA)가 일진머티리얼즈 최대주주인 허재명 이사회 의장의 보유 지분 53.3%에 대해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11일 공시했다. 총 인수 대금은 2조7000억원, 계약금은 거래액의 10%인 2700억원이다. 취득예정일은 내년 2월이다.
이번 인수는 2차전지 밸류체인을 확대하려는 롯데그룹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배터리 핵심소재인 음극재 생산에 필요한 동박을 제조하는 전문 기업이다. 국내에서는 일진머티리얼즈와 함께 SK그룹의 SKC, 롯데정밀화학이 대주주인 솔루스첨단소재 등이 생산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인수로 진입 장벽이 높은 글로벌 동박 시장에서 단숨에 4위로 도약하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안정적 재무구조를 갖춘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유지해왔다.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8165억원, 부채비율은 48.0%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영업환경 둔화와 신사업 투자 확대로 인해 순차입금이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부채비율은 52.1%에 그쳤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평가한 신용도 역시 'AA+' 등급을 유지했다.
이번 인수 딜 이후 이같은 경영 상황은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인수 대금은 롯데케미칼의 재무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 올해 상반기 연결 재무제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은 약 2조8164억원이다. 이에 더해 경쟁이 치열한 동박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대규모 투자도 필요하다. 그룹 차원의 지원도 가능하겠지만 결국 대규모 차입이 불가피하다.
◇인수 이후에도 대규모 투자 전망...신용등급 하향검토
롯데케미칼은 이번 인수 이전에도 업황 악화로 인해 재무부담이 예상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상승하며 올해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익성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기존 사업의 증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한 투자 등으로 투자 부담도 상승해왔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와 별도로 오는 2030년까지 총 4조원을 투자해 연간 매출액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실제 인수 직후 등급 재검토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전날 롯데케미칼의 공시 직후 이 회사 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등재했다고 발표했다. 나신평은 "우수한 재무안정성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번 인수로 대규모 자금이 소요될 예정"이라며 "동박 사업 확대를 위해 추가적인 투자가 지속되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인수 이후에도 현금흐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신평은 이와 함께 롯데지주의 신용등급도 하향검토 대상에 올렸다. 지주 신용도가 주력 계열사들의 자체신용도를 가중평균해 산출되기 때문에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하락이 지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또한 롯데지주는 올해 들어 코리아세븐 유상증자(3984억원), 롯데헬스케어 설립(700억원), 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등 신규 사업투자를 진행한 바 있어 향후 롯데케미칼에 대한 자금 지원에도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른 국내 신평사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8월 본평가에서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하향 변동요인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1 이상일 경우로 제시했다. 상반기 기준 이 수치는 0.98배로 1.0배에 근접해 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최근 석유화학 업종 분석 보고서에서 롯데케미칼의 주요 모니터링 사항으로 투자부담 수준과 재무안정성 통제 여부 등을 꼽았다. 이번 인수로 재무부담이 크게 가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만간 레이팅 액션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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