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 핵심은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다. 현대그린푸드와 현대백화점을 각각 인적분할해 2개의 지주사를 설립하고 지배력을 키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여기에 기존 사업회사 지분을 홀딩스에 현물출자 할 경우 '오너일가-홀딩스-사업회사'의 연결고리는 더욱 단단해질 가능성이 크다.
명목상으로 이번 지주사 전환은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오너일가인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형제가 그룹 경영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형제경영에서 탈피하고 계열분리를 단행하기 위해 포석을 쌓고 있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정지선·정교선 형제, 현대백화점·현대그린푸드 지배력 강화할까
현대백화점그룹 지배구조의 특징은 형제인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각각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의 단일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정 회장은 현대백화점 지분 17.09%를, 정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 지분 23.8%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은 또 현대그린푸드 지분 12.7%를 들고 있다. 요약하면 그는 현대백화점의 최대주주이자 현대그린푸드의 2대주주다.
현대그린푸드와 현대백화점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해왔다. 현대백화점은 유통사업을, 현대그린푸드는 식품을 비롯한 유통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을 맡았다.
이를 감안하면 정 회장의 지분율은 그룹을 완전히 장악할 만큼 높은 편은 아니다. 지배구조상 현대그린푸드의 최대주주는 동생인 정 부회장이다. 현대그린푸드는 또 현대백화점 지분 12.5%를 갖고 있다. 정 회장 형제의 부친인 정몽근 명예회장도 현대그린푸드와 현대백화점 지분을 각각 1.9%, 2.63% 갖고 있다.
결국 정 회장이 현대백화점그룹의 총수로서 그룹을 장악할 수 있는 건 동생인 정 부회장 등이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롯데그룹과 같은 '형제의 난'이 발생한다면 정 회장이 총수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 가운데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지배력이 한층 강화되는 쪽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개편작업의 핵심으로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를 인적분할해 각각 투자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주주들이 사업회사 지분을 홀딩스에 넘기는 현물출자를 단행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렇게 되면 각 홀딩스 아래에 사업회사가 배치된다. 주주들은 사업회사 지분을 홀딩스에 넘기는 대신 홀딩스 신주를 추가로 취득한다.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가 홀딩스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는 만큼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는 셈이다. 다만 현물출자 당시 참여주주 구성이나 시가총액에 따라서 지배력이 어느정도 수준으로 커질지가 관건이다.
◇정지선의 현대百·정교선의 현대그린푸드, 계열분리 가능성 커졌나
현대백화점그룹이 이처럼 정 회장 형제의 지배력을 키우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이유는 뭘까. 그룹 측은 "사업 전문성 확대와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그리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선진화된 지배구조 확립 차원에서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현 시점에서 계열 분리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알 수 없다"며 계열분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재계에서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사 전환이 궁극적으로는 계열분리를 위한 포석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정 회장이 현대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유통사업을, 정 부회장이 현대그린푸드를 중심으로 한 식품과 비식품사업을 맡는 쪽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시장에서는 정 회장이 직접 보유한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정 부회장에게 넘기고 정 부회장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그린푸드가 가진 현대백화점 지분을 맞교환하는 식으로 지분 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정 부회장이 현대그린푸드를 중심으로 완전히 독립된 기업집단으로 거듭날지 혹은 현대백화점그룹 내에서 독립된 경영을 펼쳐나갈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동안 업계에서 이같은 계열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정 회장이 2020년 3월 현대그린푸드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임기를 더이상 연기하지 않고 사임하는 수순을 밟은 것도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행보로 해석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사내이사로서 이사회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또 현대그린푸드와 달리 현대백화점에서는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경영을 진두지휘한다.
그러나 현재 지배구조와 같이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에 대한 지배력을 상호보완하는 구조에서는 계열분리가 쉽지 않다.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각각 개별적으로 보유한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 지분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지주사 전환이 정 회장 형제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지도 주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지주사 전환으로 오너일가가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계열분리가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를 두고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변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