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회색 자본, 영구채 러시

'IPO' 약속했던 롯데컬처웍스, 내년 기한 도래

④이노션과 지분스와프 계약, 올 5월 연장…재무개선 '부담'

고진영 기자  2024-12-05 16:04:36

편집자주

신종자본증권 시장이 전례없이 붐비고 있다. 이론상 영원히 안 갚고 이자만 낼 수 있어 영구채라 불리지만 사실은 자본성이 최소화된 모순적 채권이다. 도입 후 십여년 동안 혼란과 의구심에 시달렸지만 올해 발행 규모가 6조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자본 같은 빚' 영구채가 필요했던 기업들의 사정을 THE CFO가 진단해본다.
롯데컬처웍스가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체결했던 기업공개(IPO) 약속기한이 올해 5월 이미 도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로 지분 스와프(맞교환)를 하면서 맺었던 계약이다.

결국 합의 하에 연장하긴 했지만 내년에 다시 기한이 도래한다. 롯데컬처웍스는 매년 축소되는 자본을 신종자본증권(영구채)으로 메우는 중인 데 상장 압박이 부담을 더하고 있다.

◇'IPO 약속' 1년단위 연장…내년 5월 도래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컬처웍스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IPO 약정 기한을 내년 5월까지로 미뤘다.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년 뒤면 다시 IPO를 하거나 계약 유예를 요청해야 하는 셈이다.

앞서 롯데컬처웍스는 2019년 이노션과 지분 스와프를 진행하면서 맞손을 잡았다. 정성이 고문이 보유 중이던 이노션 지분 일부(10.3%)를 롯데컬처웍스에 넘기고, 대신 롯데컬처웍스 신주 13.6%를 받는 형태로 지분을 바꿔 가졌다.

당시 두 회사는 이해관계가 맞았다. 이노션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오너일가 지분율을 20% 밑으로 떨어뜨려야 했다. 상장을 준비하고 있던 롯데컬처웍스는 이노션과의 제휴를 통해 외형 확장을 노렸다.

이에 따라 현재 롯데컬처웍스 2대주주엔 정성이 고문(13.63%)이 올라 있다. 다만 지분교환을 할 때 양측은 조건부 재매입약정을 덧붙였다. 일정기간 내 롯데컬처웍스가 기업공개를 하지 않으면 정 고문이 롯데컬처웍스에 주식을 되팔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지분 스와프가 이뤄지자마자 상영관 시장에 대대적 불황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극장가에서 코로나 충격파는 2020년부터 본격화됐다. 롯데컬처웍스 역시 매출이 급감한 반면 영화관 임차료,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은 이어진 탓에 손익 악화가 계속됐다. 2019년 이후 매년 순손실이 이어지면서 가까운 시일 내 상장은 물 건너간 처지다.

현재 롯데컬처웍스에서 상장 관련 작업은 중단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정 고문에게서 주식을 되사오기엔 현금이 넉넉치 못한데 언제까지 계약을 연장만 하기도 어렵다. 재무개선에 대한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재무개선 '조급'…영구채 잔액 3500억

벌써 8차례나 영구채를 발행한 것도 같은 차원에서 해석된다. 롯데컬처웍스가 신종자본증권을 처음 발행한 때는 팬데믹 여파가 한창이던 2021년이다. 전년 자본총계 규모가 1500억원 수준으로 급감하자, 영구채로 1400억원을 조달해 자본잠식을 면했다.

2022년에도 신종발행증권 300억원을 추가로 찍었다. 그 해 영구채를 합친 롯데컬처웍스의 자본총계가 290억원. 이중 납입자본금이 244억원이고 그 해 300억원의 신종발행증권을 추가발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딱 자본잠식을 피할 만큼 영구채를 찍었던 셈이다.

롯데컬처웍스는 작년에도 4월 400억원, 6월 300억원, 1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억원과 300억원 등 총 1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을 발행했다. 2년 전 발행했던 영구채 1400억원의 콜옵션(조기상환권) 행사 시점이 다가오면서 차환발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존 영구채 상환으로 생긴 자본의 공백은 신규 영구채가 메웠지만 조달 여건이 어려워지다 보니 지난해 또다시 발생한 순손실 467억원은 채워 넣을 여력이 없었다. 작년 말 기준 롯데컬처웍스의 연결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211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롯데컬처웍스는 또 신종자본증권 조달로 자본잠식을 탈출했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2000억원어치 영구채를 찍었다. 그동안 주로 소폭씩 찍었는데 비교적 대규모다. 이 정도 물량이 소화된 것은 모회사 롯데쇼핑의 자금보충 덕분으로 보인다.

영구채를 넘겨받은 '모멘텀 제1차'라는 유동화 회사가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유통하고, 롯데쇼핑이 자금보충약정을 섰다. 롯데컬처웍스 자력 조달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의 총차입금은 7732억원(리스부채 포함)에 달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영구채 잔액이 3500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1조원 이상의 차입 부담을 지고 있다.

고전이 계속 되면서 정 고문이 가지고 있던 롯데컬처웍스 주식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지분교환 당시 1260억원 상당으로 평가됐지만 외부전문평가기관이 산정한 공정가치는 작년 말 기준 444억원 수준까지 내려왔다. 매수청구권 행사가능일이 1년 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이 금액은 현재 유동부채로 잡혀있다.

또 롯데컬처웍스는 가지고 있던 이노션 지분을 2년 전 롯데지주와 롯데쇼핑에 절반씩 넘겼고 두 회사는 이 주식을 2027년 7월까지는 처분하지 못한다. 적어도 이 기간까지는 정 고문과 롯데컬처웍스도 계약 연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주식가치가 워낙 떨어져 있어서 정 고문도 지금 팔기보다는 어느정도 회복을 기다리는 게 낫다 판단했다고 본다”이라며 “아마 내년에도 연장은 되겠지만 상장할 방법이 사실상 안보이니 롯데컬처웍스도 꽤 조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