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IB(investment banker)는 기업의 자금조달 파트너로 부채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을 이끌어가고 있다. 더불어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워낙 비밀리에 딜들이 진행되기에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기도 한다. 더벨은 전문가 집단인 IB들의 주 관심사와 현안, 그리고 고민 등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보고자 한다.
SK그룹이 연말을 앞두고 '조 단위' 조달에 나서 IB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11~12월에만 SK㈜에 이어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등 주요 계열사들이 공모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기존에는 기관들의 북클로징이 진행되는 시기라 발행이 뜸할 테지만 올해는 계열사마다 차환 이슈가 발생하면서 조달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이자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기 위한 목적도 크다. 회사채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서 그간 고금리로 차입했던 자금을 차환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SK㈜의 경우 이달 연 5.45% 수준의 금리로 발행했던 기존 회사채를 3%대 금리로 차환할 예정이다.
◇차환 이슈 줄줄이 도래…RCPS 대금 상환용 사모채 조달도 눈길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11~12월 1조원에 달하는 공모 회사채를 발행한다. SK㈜가 오는 28일 40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한다. 전액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 이달 말과 내달 초 총 2100억원 가량 회사채의 만기가 도래한다.
내달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도 회사채 시장을 찾는다. 각각 최대 3000억원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발행 목적은 마찬가지로 차환이다. SK텔레콤은 내달부터 1월초까지 총 2300억원 가량 회사채의 만기가 도래한다. SK브로드밴드 역시 내년 1월 1000억원 만기물에 대응해야 한다.
SK그룹의 경우 발행 목적이 차입금 상환에만 있는건 아니었다. SK텔레콤의 경우 차입금 상환후 남은 자금을 SK브로드밴드 지분 인수에 쓸 계획이다. 태광산업과 미래에셋이 보유한 SK브로드밴드 지분 24.76% 인수에 1조1500억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자금 부담이 커졌다. 비핵심 자산 매각 등으로 인수자금 일부를 확보하고 나머지 일부는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지난달 SK E&S의 경우 SK이노베이션과의 합병을 앞두고 2조80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한번에 발행하기도 했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대상으로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신설 자회사에 넘기는 과정에서 만기 일주일 짜리 초단기 사모채를 찍었던 것이다. 보통 단기로 조달할 경우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하는 것과 다르게 사모채를 활용했다는 점은 이례적으로 평가됐다.
SK계열사들이 연말 회사채 시장을 찾은데는 값싼 이자비용을 누리기 위한 목적도 크다. SK㈜의 경우 연 5.45% 수준의 금리로 발행했던 기존 회사채를 오는 28일에는 3%대 금리로 차환한다. 북클로징이 진행되는 시기이지만 연말 수급은 충분한 편이다. 본격적인 금리 인하가 시작되며 회사채 금리도 안정되자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말 회사채 시장을 찾게 됐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SK그룹 뿐 아니라 차입금 상환일이 대거 도래하면서 내년에도 공모채 발행액이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1년 미만 만기일 도래 예정인 현대자동차, 롯데, 한화, GS 등 대기업그룹의 발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SK그룹 올해도 최대 이슈어, 2·3위와의 격차 커
SK그룹은 올 한해 공모 회사채 발행량이 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더벨플러스에 따르면 26일 기준 누적 발행액은 7조1800억원이다. 이는 사모펀드에 매각된 SK렌터카가 지난 8일 발행(4000억원)한 금액까지 합산한 금액이다. 해당 금액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지주사인 SK,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의 최대 발행액 1조원까지 합하면 거의 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9조8850억원)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역대 발행액 중에선 높은 규모에 해당한다. SK그룹은 지난 2020년 7조5140억원, 2021년 7조9170억원, 2022년 6조60억원 등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으로 한동안 자금 조달이 없었는데도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게 된 셈이다.
지주사인 SK만 하더라도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다. SK온의 경우 모회사로 자금 부담이 컸던 SK이노베이션을 지원하면서 발행액이 커졌다. SK온이 8000억원, SK인천석유화학과 SK하이닉스가 7000억원대, SK이노베이션은 5000억원 수준이다.
이로써 SK그룹은 올해도 대기업 그룹 중 회사채 발행 규모 1위 그룹사로 등극할 전망이다. 올해 4조원대의 회사채를 발행한 LG그룹, 한화그룹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을 발행할 예정이다. 석유화학, 배터리 투자로 매년 회사채 발행을 늘려온 가운데 계열사 마다 차입금 만기가 돌아와 외부 차입을 계속 늘린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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