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과일을 끊을 작정이다. 현대인의 지나친 당 섭취가 얼마나 위험한지 구구절절 적어놓은 기사를 최근 읽었다. 여름 내내 복숭아를 매일 4개씩 먹었는데 결단의 필요성을 느낀다.
당이 그렇게 건강에 나쁘다면서 왜 인간은 아직도 단맛에 끌리게 설계되는지 모르겠다. 별볼일없는 생존력이다. 반면 요즘 바퀴벌레들은 단맛을 싫어한다. 독미끼에 탄 시럽을 먹고 줄줄이 황천길로 가니까 불과 몇년만에 완전히 다른 입맛으로 진화했다. 수억년 끈질기게 살아남은 곤충답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위기가 닥치면 달라질 필요가 있다. 그만큼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중요해진다. 10여년 전 다 죽어가던 포드를 되살린 것 역시 CEO인 앨런 멀러리의 대담한 전략 선회, 그리고 CFO 루이스 부스의 뒷받침이었다.
멀러리가 영입된 2006년, 포드는 100년 넘는 역사 이래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2008년까지 3년간 기록한 손실만 300억달러를 웃돈다. 하지만 멀러리는 이듬해 극적인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부스는 창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부채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2012년엔 5년 만의 첫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회복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포드는 사업구조 자체를 바꿨다.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등 기존의 고급차 브랜드를 모조리 팔아치운다. 라이벌이었던 크라이슬러와 GM이 허덕이면서도 고급차 브랜드를 포기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3대 자동차업체 중에서 유일하게 포드만 파산조치 없이 금융위기를 극복해냈다.
최근 ‘삼성전자 위기론’이 고개를 든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의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뺏겼기 때문이다. 설사가상 파운드리 시장에선 TSMC가 62%의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상 따라잡기 요원해 보인다.
자금흐름을 봐도 위협은 실존하고 있다. 2001년 이후 무차입을 고집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무려 20조원을 차입해왔다. 문제는 올해도 갚은 돈보다 빌린 돈이 많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별도 차입금이 단기대출을 중심으로 4조원 순증했다. 규모가 크진 않아도 재무정책상 흐름이 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국내 본사에서 벌어들이는 현금만으로 설비투자를 충당하고도 남았지만 이제 자금운용이 빠듯해졌다는 뜻이다.
얼마전 반도체부품사 취재원을 만났다. 그는 “앞으로 HBM은 마이크론 같은 미국회사 점유율이 올라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돈다”고 말했다. 삼성이 정말 뭐라도 해야할 때가 왔다는 전언이다. 아무튼 지구에서 3억년을 버틴 강한 종(種)의 교훈, 변화는 빠르고 혁명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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