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험업계에 밀어닥친 회계기준 변경의 충격은 보험사들이 안고 있는 자본관리 과제에 무게를 더했다. 약점 보강을 위한 보험사들의 자본확충 러시는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효과가 장기적인 자본관리의 안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경영전략의 수립이다. 보험사들의 자본확충 현황과 효과, 향후 전략을 들여다본다.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보험사들이 자본확충 수단으로 후순위채 발행을 우선 고려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손해보험이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하나손보는 지급여력제도(K-ICS제도, 킥스제도)의 경과조치를 신청하지 않은 만큼 자본의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계속되는 손실 누적으로 기본자본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높은 이자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기본자본 확충 효과가 있는 신종자본증권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후순위채 우선' 트렌드 역행한 하나손보
하나손보는 올 1분기 말 기준 가용자본이 3360억원, 요구자본이 259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급여력비율(킥스비율)은 129.32%로 감독 당국의 권고 기준인 150%를 밑돌았다. 이에 5월 30년 만기의 신종자본증권을 1000억원 규모 발행해 가용자본을 보강했다. 이를 반영하면 킥스비율은 167.82%까지 높아진다.
업계에서는 자본확충의 수단에 주목한다. 올 상반기 보험사들은 8건의 자본확충을 통해 총 1조4390억원을 조달했는데 이 중 신종자본증권을 통한 자본확충은 하나손보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후순위채 발행이 6건, 유상증자가 1건이다.
지난해 킥스제도 도입 이전까지만 해도 보험사들은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을 선호했다. 유상증자와 달리 주주에 직접적 출자 부담을 안기지 않는데다 손실흡수성이 낮은 보완자본으로 전액 분류되는 후순위채와 달리 인정비율에 따라 손실흡수성이 높은 기본자본으로 분류돼 자본의 질적 개선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킥스제도 도입 이후 감독 당국은 신종자본증권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이자율 스텝업 조항이 있는 하위 신종자본증권은 보완자본으로 분류하고 스텝업 조항이 없는 상위 신종자본증권만을 비율에 따라 기본자본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신종자본증권을 자본확충의 '1옵션'으로 고려하지 않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교보생명과 KDB생명 이후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자본을 확충한 보험사가 없다가 올 5월 하나생명이 1년만에 다시 신종자본증권을 활용했다.
신종자본증권은 통상 30년 만기로 10년 만기인 후순위채보다 금리가 높게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스텝업 조항마저 없다면 표면이자율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자본의 질적 개선보다 이자부담의 회피를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하나손보는 이자부담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 올들어 보험사들이 발행한 후순위채 6건의 이자율은 최저치가 현대해상의 4.48%(5000억원), 최고치가 푸본현대생명의 7%(1200억원)였으며 평균값은 6.119%다. 반면 5월 하나손보가 발행한 1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은 스텝업 조항이 없는 상위 신종자본증권으로 이자율이 10.655%다.
◇연 106억 이자부담에 무거워진 실적개선 과제
하나손보는 적자 탈출이 절실한 디지털 보험사 중 하나다. 올 1분기 말 기준으로 자본단에 1409억원의 결손금(마이너스 이익잉여금)이 누적돼 있다. 기타포괄손익누계액 역시 -30억원을 기록하며 순자산을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이에 하나손보는 보통주 자본만 4611억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순자산은 그에 못 미치는 3378억원을 기록했다.
순자산, 즉 자기자본은 기본자본의 구성요소다. 하나손보는 자본감소를 점진적으로 인식하는 킥스제도의 경과조치를 신청하지 않아 손실흡수성이 높은 기본자본을 면밀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경과조치 적용 보험사 대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지난해 1분기 2279억원의 기본자본은 올 1분기 1138억원으로 반토막난 상태다. 이는 하나손보가 높은 이자부담에도 후순위채가 아닌 신종자본증권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기본자본 관리의 필요성을 감안하더라도 이자부담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상 2023년 1월 이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기본자본 인정한도는 요구자본의 10%로 올 1분기 말 기준 하나손보의 경우는 260억원이다.
반면 5년 뒤 콜옵션 상환을 가정할 때 하나손보가 지는 이자부담은 총 530억원, 연간 106억원이다. 2020년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된 이후 사옥 매각의 일회성 이익을 통해 170억원의 순이익을 낸 2021년을 제외하고는 순이익을 낸 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자비용이 결손금 증가세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나손보는 지난해 말 삼성화재 출신의 장기보험 전문가 배성완 전 부사장을 영입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그간 디지털 보험사로서 소액 단기보험에 집중해 왔으나 실적이 개선되지 않자 장기보험 강화를 통한 적자 탈출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장기보험 강화 전략의 성과가 빠르면 빠를수록 원활한 자본관리에 보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