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한국엔 없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십분 활용해 의결권 76%를 행사하며 막강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만이 보유할 수 있는 보통주 클래스B 주식으로 창업자로서의 지위가 단단하다.
이 주식을 매각하거나 증여, 상속하지만 않는다면 차등의결권은 쭉 유효하다. 상장 직후 김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B 주식의 1% 정도 되는 지분을 클래스A 주식으로 전환해 현금화한 것 말고는 3년 간 지분 변동도 없다.
쿠팡의 핵심 주주로는 단연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꼽힌다. 보유주식으로만 따지면 김 의장을 비롯, 그 어떤 쿠팡 투자자들보다 압도적인 지분을 갖고 있다.
이는 소프트뱅크가 쿠팡의 성장 히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쿠팡이 적자의 늪에 허덕일 때에도 뚝심있게 수조원대 자금을 쾌척했다. 다만 최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차세대 사업으로 인공지능(AI)을 낙점,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함에 따라 쿠팡도 소프트뱅크 지분 없는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자금 들어와도 '끄덕없는' 김범석 의장의 보통주 클래스B 김 의장은 2010년 8월 미국에서 쿠팡Inc의 전신인 포워드벤처스LLC를 만들었다. 이후 같은 해 한국에 쿠팡의 전신인 유한회사 포워드벤처스를 세우고 소셜커머스 서비스인 '쿠팡'을 시작했다. 자본금은 단돈 30억원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온라인 공동구매 방식의 '그루폰'에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한국에 도입했다. 상호를 서비스 명칭이었던 쿠팡으로 바꾼 건 창립 7년 만인 2017년 일이다.
김 의장은 수년 동안 다양한 미국 벤처캐피탈(VC) 투자자들과 쿠팡의 든든한 백기사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았지만 경영권을 간섭받은 적은 없다. 그가 적자의 늪 속에서도 창립자로서의 지배력을 갖고 조 단위 투자를 뚝심있게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김 의장의 지배력이 지분이라는 숫자로 수면 위에 드러난 것은 상장 이후다. 쿠팡은 2021년 3월 기업공개(IPO)에서 보통주 클래스A(일반주식)와 보통주 클래스B를 통해 45억5000만 달러(약 5조1678억원)를 조달했다. 김 의장은 클래스A 주식은 보유하지 않고 클래스B 주식만 100%(1억 7600만2990주) 가졌다. 클래스B 주식은 1주당 의결권 29표의 슈퍼 의결권을 갖는 주식으로, 1주당 의결권 1표를 갖는 클래스A와는 차별화된다. 클래스B 주식은 김 의장만 보유한다.
김 의장의 클래스B 주식을 클래스A로 전환한다면 지분율 10.2%를 확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상장 초반 김 의장의 보유 지분가치는 쿠팡의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훌쩍 넘기면서 한 때 10조원가량으로 뛰기도 했다. 업계는 그가 2010년 자본금 30억원을 투입했던 데서 11년 만에 3227배의 차익을 실현했다고 입을 모았다.
클래스A와 클래스B 주식을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상장 직후 전체적 지분율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33.1%, 그린옥스캐피탈이 16.6%, 닐 메타가 16.6% 등이었다. 김 의장은 4대 주주 정도 위치였지만 두려울 것이 없었다. 차등의결권으로 김 의장의 의결권이 76.7%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 덕분에 추후 어떤 자금이 들어와도 김 의장의 지배력은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됐다.
김 의장은 상장 직후 클래스B 주식 120만주를 클래스A 주식으로 전환해 475억원을 현금화한 바있다. 차익실현보다 상장 초기 대주주들이 거래 활성화를 위해 매각하는 물량 중 일부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다만 당시 매각 물량이 김 의장이 갖고 있는 주식의 1% 미만이었던 만큼 지분율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의결권은 당초 76.7%에서 76.2% 수준으로 줄었다. 당시 김 의장의 보유 주식 수 1억7480만2990주는 현재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김 의장은 상장 전인 2020년 12월 말 스톡옵션으로 클래스B 주식 660만7891주를 부여받았다. 아직 행사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유 중이다. 행사가격은 16.46 달러로 행사기한은 2028년 7월 2일이다. 전일 종가 기준 쿠팡 주가가 23달러에서 마감된 만큼 4322만달러, 589억원가량의 차익을 누릴 것으로 추산된다.
◇굳건한 우군, 쿠팡의 최대주주 '소프트뱅크'...수혜도 '최대'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으로 한국의 전자상거래에서 압도적인 1위 회사로 급성장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이미 최대주주이지만 쿠팡을 더욱 강도높게 뒷받침해 나가고자 한다."
2018년 1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설명회 당시 한 말이다. 3년 전인 2015년 소프트뱅크의 돈 10억달러를 붓고도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있던 쿠팡이었으나 손 회장은 변치 않는 강한 신뢰를 보냈다. 설명회 이후 소프트뱅크의 20억달러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VF)는 쿠팡의 든든한 조력자로 자리해 왔다. 쿠팡은 2014년 이후 '24시간 이내 로켓배송'을 내세우며 전국에 대규모 물류센터들을 구축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거의 즉각 배송에 돌입해야 하는 만큼 이 물류센터들에 최대한 다양한 상품을 준비해 놓으려 재고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이를 신속히 배달할 '쿠팡맨'들도 대거 고용했다. 이 모든 구조가 원활히 돌아가게 하려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했는데 소프트뱅크의 재력이 그 원동력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에 10억달러(1조1000억원), 2018년에 20억달러(2조2130억원)의 자금을 쿠팡에 투자했다. 자그마치 3조3000억원이 넘는 돈이다. 2010년 공식 출범한 쿠팡은 소프트뱅크 투자 이전에도 2010년 파운더콜렉티브와 로즈파크어드바이저, 2011년 매버릭캐피탈과 알토스벤처스, 2014년 세쿼이아캐피탈과 블랙록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1억~3억달러 투자가 있을 때에도 '대규모 투자 유치'라는 수식어가 붙었었는데 소프트뱅크의 투자금액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대규모 투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소프트뱅크의 대단한 지원으로 김 의장은 비로소 그동안의 구상안을 제대로 현실화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소프트뱅크의 쿠팡에 대한 지배력도 공고해졌다. 2015년 10억달러를 투자했을 때 이미 20%가량의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는데 2018년 투자로 쿠팡 지분 40~50%까지 확보했다. 타 투자자들의 지분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쿠팡은 손 회장과 김 의장과 공동경영 체제라는 말이 나왔던 이유다.
오로지 혁신성만 보고 적자기업 쿠팡에 거금을 투자한 소프트뱅크는 2021년 3월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으로 엄청난 평가차익을 누리게 된다. 상장 직후 지분율이 37%였던 만큼 한 때 886억5000만달러(100조원)을 넘어선 쿠팡의 기업가치 덕분에 소프트뱅크의 지분가치는 336억8700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3조원의 투자가 38조원으로 돌아온 것이다.
든든한 우군이자 반가운 백기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소프트뱅크는 쿠팡 기업공개 당시만 해도 "쿠팡의 성장을 믿는다"며 "지분을 팔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보호예수 기간이 종료되자 마자 연달아 주식을 팔아치웠다.
2021년 9월 5700만주를 팔아 2조원을 현금화했고 2022년 3월에는 5000만주를 1조3000억원에 추가 매각했다. 같은 해 12월엔 3500만주를 8423억원에 팔았다. 당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자금난과 막대한 투자손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쿠팡은 비전펀드가 투자 손실을 감수하지 않고 매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자산 중 하나였다.
한동안 쿠팡에 대한 보유 지분을 유지하고 있던 소프트뱅크는 최근인 올 3월 4번째 쿠팡 지분 매각에 나섰다. 규모는 쿠팡 주식 3161만주, 한화로 8059억원 수준이다.
손 회장이 차세대 사업을 AI로 정하고 최대 88조원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실탄을 확보 중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쿠팡 주식의 추가 매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추가 대규모 펀딩 가능성을 차치하고는 쿠팡이 소프트뱅크 지분 없이 본연의 사업만으로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소프트뱅크는 여전히 쿠팡Inc의 공고한 최대주주다. 현재 지분율은 21.7%가량이다. 2대 주주인 베일리 기포드와도 지분율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