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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거버넌스

천리 밖을 내다본 영리한 지배구조 설계

차등의결권·미국 상장, 국내 규제 사정권과 '거리'…친족 없는 단순명료

김현정 기자  2024-05-10 14:25:52

편집자주

신생기업의 다양한 거버넌스 출현을 얘기할 때마다 쿠팡이 거론된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미국법인 지주회사, 차등의결권을 통한 창업주의 지배력 확보 등 지배구조 구축의 발자취마다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녔다. 이번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공정거래법상 총수 미지정을 계기로 쿠팡 거버넌스의 형태와 주주구성 및 지배구조 변화를 살펴본다.
김범석 쿠팡Inc(쿠팡 미국법인) 의장이 이번에도 동일인(총수) 지정을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미리 마련해놓은 지배구조상 여러 장치들이 그를 향한 칼날을 다시 한 번 무력화시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기업의 순환출자, 친족경영, 그들간의 사익편취 등을 감독·제재한다. 쿠팡의 지배구조는 극히 단순한 데다 친족들은 물론 김 의장까지 국내 계열사 지분을 단 1주도 보유하지 않는 만큼 친족경영으로 볼 여지가 없도록 설계됐다. 국내 계열사만을 감시망에 넣을 수 있는 공정위로선 김 의장은 치외법권이다.

김 의장의 쿠팡Inc 지분율은 10% 정도로 상장사 지배력 기준인 30%를 크게 밑돌지만 실질 의결권은 70%가 넘는다. 차등의결권이란 장치 덕분이다. 이 모든 건 미국 상장이란 큰 그림 속에서 가능했다.

◇외국인도 '동일인' 지정 길 열렸지만…김범석 의장 또 다시 논외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7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대기업 집단의 동일인으로 외국인도 지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해당 개정은 김 의장이 촉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쿠팡이 자산 5조원을 넘어서면서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으로 들어올 당시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해갔고 이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크게 일었다.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면한 것은 외국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7세 때 대기업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 추후 미국 국적을 취득한 케이스다.

동일인은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공정위가 지분율과 임원 선임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판단한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혈족 6촌, 인척 4촌까지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여부가 적발되면 제재, 검찰 고발을 당할 수 있다. 동일인이 법인으로 지정되면 문제 발생 시 법인이 벌을 받지만 사람(자연인)으로 지정되면 개인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동일인 지정을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다.

최근 3년 동안 이와 관련해 공정위 내부적으로 많은 연구와 컨설팅이 있었던 만큼 공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김 의장 역시 총수 지정을 받고 공정위의 그물망에 들어올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이번 개정에서 국적과 무관하게 동일인이 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는 마련됐으나 김 의장은 새로 만들어진 '동일인 예외조항' 4개를 모두 충족하면서 총수 지정을 피했다.

쿠팡은 △동일인을 자연인으로 보든 법인으로 보든 기업집단의 범위가 동일하고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으며 △해당 자연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자연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다는 것을 인정받았다.

◇친족경영 개입 전혀 없는 심플한 지배구조

김 의장이 쿠팡을 사실상 지배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쿠팡의 창업자인 그는 유일하게 29배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B Class 주식으로 지분을 보유 중이며 76.5%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한국 쿠팡 지분 100%를 가진 미국 쿠팡 Inc.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국내 여러 사업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2020년 미국 뉴욕증시 상장신고서에도 김 의장에 대해 "쿠팡의 B클래스 소유주이며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김범석은 이번 기업공개(IPO) 이후 76.7%의 의결권을 보유할 것이고 이사 선임을 포함해 주주들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의 결과를 통제할 능력을 갖게 된다."고 적시했다. 임원 선임이나 회사 경영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자를 동일인으로 규정한 공정위의 의도에 비춰본다면 그는 총수가 맞다.

하지만 쿠팡은 김 의장이 애초에 공정위의 동일인 지정 의도와 취지를 바탕으로 법률상 다툴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놓았다. 첫번째가 깔끔한 지배구조다.

동일인 지정제도는 1987년 재벌 일가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부의 세습 등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196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특정 가족이 여러 회사를 지배하는 재벌 체제가 등장했고 친족 경영, 그들 간의 일감 몰아주기에 의한 사익편취, 순환출자 등이 횡행하면서 이를 제재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이 제정됐다.

쿠팡 지분구조의 경우 순환출자와 거리가 멀다. 김 의장이 쿠팡Inc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이를 통해 쿠팡 한국법인과 물류사업을 담당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를 비롯해 쿠팡페이, 쿠팡이츠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CPLP 등 자회사를 지배한다. 지극히 단순한 구조다.

계열사에 대한 쿠팡의 지분율이 100%라 김 의장이나 친족이 들어갈 여지도 없다. 김 의장과 그의 친족의 국내 쿠팡법인 혹은 계열사 지분은 하나도 없다. 김 의장 동생 부부가 쿠팡Inc 주식을 24만 주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쿠팡Inc는 미국 시장에 상장된 법인이기 때문에 '국내 계열회사 출자'를 금지한 공정법상 문제가 없다.

또 김 의장 동생 부부가 한국 쿠팡에 재직 중이나 이 역시 공정위 감시망을 빗겨간다. 공정거래법에선 친족이 임원에 임명된 것도 감시 대상에 넣지만 그의 동생 부부는 공정거래법상 임원에 해당하는 직급이 아닌, 단순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도 미국 국적이지만 김 의장과 달리 진작에 총수로 지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OCI는 총수 친족이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숙부 이복영 회장과 그의 아들 이우성 SGC에너지 부사장이 SGC에너지의 최대주주로 있으며 또 다른 숙부 이화영 회장은 유니드의 최대주주다.

◇차등의결권, 미국 상장→국내선 없는 지배구조 가능케 한 도구

이 밖에 김 의장의 지분율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실제 김 의장의 쿠팡Inc 지분은 10.1%에 불과하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동일인으로 판단하는 지분율을 우선적으로 30%로 규정하고 있다. 동일인이 단독 또는 관련자와 함께 해당 기업의 발행주식(우선주 제외)의 30% 이상을 소유하고 최다출자자여야 한다. 김 의장의 지분은 30%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쿠팡Inc의 엄연한 최다 출자자는 소프트뱅크다.

여기에 국내엔 없는 차등의결권이란 장치를 활용해 76%의 지배력을 확보했단 점도 영리한 설계로 볼 수 있다. 차등의결권이란 주식 1주마다 1개의 의결권이 아닌, 2개 이상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말한다. 김 의장의 보유 주식엔 의결권 29배가 가능한 슈퍼의결권이 붙어있다. 실제 지분율은 적지만 김 의장 개인이 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다.


이는 애초에 미국 상장이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한국서 유통업을 메인으로 영위하는 쿠팡이 미국에 상장한다고 했을 때 '왜'라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는데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차등의결권이 거론됐었다. 한국 재벌기업들의 숙원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적은 지분율로도 경영권 방어가 가능해 재벌들에게 매력적인 장치이지만 허용되지 않고 있다.

그 밖에도 상장을 준비하면서 김 의장이 한국 쿠팡법인 대표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 모두를 내려놓은 것 역시 감시망이 국내에 한정될 수 밖에 없는 공정위로부터 거리를 두게 한 요소로 꼽힌다. 실제 쿠팡이 기업공개를 하면서 작성한 상장신고서에는 국내 법규가 사업의 리스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쿠팡의 상장 신고서는 위험요인(Risk Factor) 중 하나로 "당사의 일부 사업은 한국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한국 계열사 임원 중 일부가 한국 계열사 혹은 한국 계열사의 임직원 행위에 대해 직접 또는 대리적 형사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당사 운영 중 일부는 복잡한 공정거래, 노동, 고용법 등의 규제를 받고 있다"고 적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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