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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은 차남

이민호 기자  2024-05-10 07:43:31
오너가(家) 장남이 아닌 이른바 'n남'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회장은 못 돼도 부회장이나 사장으로 계열사 대표이사에 만족하거나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그룹을 떠나는 방법이 있다. 두산 일가처럼 차남이나 삼남도 순서대로 회장을 하는 곳은 드물다. 그룹에서 독립된 터전을 챙겨주는 'n남'은 그래서 복을 받았다. 이 터전은 독립의 기반이 된다.

홍정혁 BGF에코머티리얼즈 사장도 복 받은 차남이다. 홍석조 BGF 회장은 '씨유(CU)'를 국내 유력 편의점으로 키워냈지만 그룹 차원에서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BGF리테일을 제외하면 뚜렷한 주력 계열사가 없었다. 이 때문에 지주사 BGF와 BGF리테일은 장남인 홍정국 BGF 부회장이 계승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구도가 잡혔다.

하지만 BGF그룹은 홍 사장만의 터전을 챙겨주는 책임도 다했다. 홍 사장은 2018년부터 BGF 신사업담당을 역임하면서 소재사업을 새로운 터전으로 정했다. BGF그룹은 △BGF에코머티리얼즈(고기능성 폴리머 소재) △BGF에코솔루션(생분해성 플라스틱) △BGF에코사이클(재활용 소재) △플루오린코리아(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자회사로 둔 케이엔더블유를 계열사로 잇따라 편입했다.

소재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에 들인 자금은 중간지주사격인 BGF에코머티리얼즈 구주(1500억원), 신주(309억원), CB(256억원), BW(435억원) 인수와 주주배정 유상증자(395억원)에 이어 BGF에코머티리얼즈에 흡수합병된 BGF에코바이오 설립자금(250억원)을 더한 3145억원이나 된다. BGF의 적극적인 투자는 '장남' BGF리테일이 배당금과 상표권사용료 등 형태로 올려보낸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룹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미래에 소재사업에 기반한 홍 사장의 계열분리를 점치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지난해 BGF에코머티리얼즈의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소폭 늘었지만 당기순이익이 적자전환하면서 아쉬운 모습도 있었다. 소재사업 실적이 바탕이 돼야 BGF의 자금 소요와 홍 사장의 계열분리에도 정당성이 생긴다.

이제 홍 사장이 증명할 차례다. 언제까지 소재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을 BGF에 의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실적만 올라와준다면 딱히 장애물이 없다. BGF의 출자 덕분에 BGF에코머티리얼즈의 지난해말 부채비율은 31%일 만큼 부채 부담이 적다.

홍 사장이 BGF 지분 10.5%를 보유해 향후 홍 회장으로부터의 지분 증여와 BGF 인적분할 이후 주식교환 등 어떤 방법으로든 BGF에코머티리얼즈에 대한 지배력을 가져가는 데도 문제가 없다. '복 받은 차남'의 향후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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