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그린파워가 유동성과 재무안정성이 떨어진 가운데 최근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3년 연속 유증이자 현금 출자로는 2년 만이다. 설비투자금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이번에도 모회사인 현대모비스가 참여한다.
H그린파워는 2010년 현대모비스와 LG화학과 합작법인으로 출발했으나 3년 전 현대모비스의 단독법인으로 바뀌었다.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의 배터리팩 제조 전문 계열사로 지난해 현대모비스와 거래액이 4조원에 육박하는 등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H그린파워는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600억원 규모의 유증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주금 납입일은 이달 20일이다. 모회사인 현대모비스가 신주 1200만주를 전량 인수한다. 현대모비스는 H그린파워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H그린파워 측은 자금 조달 목적으로 "대규모 설비와 거점 투자 재원 확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H그린파워의 현금창출력은 크게 향상됐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1282억원으로 전년 대비 유출(-)에서 유입(+)으로 전환됐다. 설비투자에 지출한 현금을 제외한 잉여현금흐름도 997억원으로, 이 또한 전년 대비 유출(-)에서 유입(+)으로 바뀌었다. 여유 현금이 발생하자 많은 차입금을 상환하면서 채무 부담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도 단기 유동성은 약화됐다. 지난해 말 유동비율은 87%로 전년 대비 3%포인트(p) 떨어졌다. 유동비율이 87%라는 건 1년 안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의 87%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360%에서 544%로 크게 상승했다.
단기 유동성 약화 배경에는 매입채무 증가가 있다. 매입채무는 H그린파워가 배터리 팩을 제조하기 위해 배터리 업체들로부터 셀 등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아직 현금 결제를 하지 않은 외상매입금 등을 말한다. 이 규모가 지난해 말 4083억원으로 전년 대비 92%(1955억원) 증가했다. 매입채무 대부분은 현대모비스와 거래에서 발생했다.
현대모비스가 이달 600억원을 출자하면 단기 유동성과 재무안정성 향상될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재무제표에 600억원의 현금이 자본으로 유입된다고 가정하면 유동비율은 약 100%로 상승하고 부채비율은 339%로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유동비율은 200% 이상, 부채비율은 200% 이하일 때 기업의 단기 유동성과 재무안정성이 준수하다고 평가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관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H그린파워가 비상장사이고 현대모비스 매출 의존도가 무려 99.8%이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지난해 말 별도기준 현대모비스 보유 현금은 5조원이 넘는다. 필요한 때 H그린파워에 추가 출자할 여력이 있다.
현대모비스는 2021년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H그린파워 지분 49%를 취득해 H그린파워를 완전 자회사로 탈바꿈했다. 이후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유증에 참여했다. 2022년과 올해는 현금 출자, 2023년에는 현물 출자로 H그린파워의 성장을 적극 지원했다. 3년간 출자한 규모만 1227억원에 이른다.
H그린파워와 현대모비스의 거래 규모도 증가했다. 지난해 H그린파워가 현대모비스에 배터리팩을 판매하면서 올린 매출은 3조8279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반대로 H그린파워가 현대모비스로부터 매입한 배터리셀 등 부품은 2조9659억원으로 이 또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양사의 거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방 산업인 전기차의 시장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지만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와 하이브리드차(HEV)의 시장 성장률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돼 H그린파워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H그린파워는 현대차와 기아의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팩을 현대모비스를 통해 공급한다.
업계 관계자는 "H그린파워는 배터리 팩 제조 계열사로서 현대차그룹 전동화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해온 곳"이라고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