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은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고 경영활동을 펼치는 석유화학사다.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한다거나 공격적인 투자를 벌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현금흐름을 고려, 재무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업을 확장해 왔다.
투자, 배당금 지출에 쓰고도 남은 현금으로는 빚을 갚거나 현금으로 비축했다. 자본이 늘어나고 부채가 늘어나며 재무구조가 견조해졌다. 2009년 말 채권단의 관리를 받았을 정도의 재무적 위기를 겪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무차입 경영'일 정도로 재무안정성이 탄탄하다.
최근 2년여간 이어진 석유화학 시장의 부진에 경쟁사들이 재무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금호석유화학에게는 '남의 얘기'다.
◇현금흐름 둔화에도 '순현금' 지난해 말 금호석유화학의 연결 재무제표 기준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1064억원으로 나타났다.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현금으로 차입금을 모두 갚고도 1064억원이 남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금호석유화학에 쌓인 현금성자산은 9893억원이었는데, 총차입금은 이보다 적은 8829억원으로 나타났다.
2009년 채권단 관리가 시작된 이후부터 금호석유화학은 부채를 감축하고 자본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총차입금은 2조원이 넘지만 영업활동에서 발생하는 총영업활동현금흐름(OCF)은 2016년까지는 연간 2000억~3000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OCF 규모가 최대 8000억원대로 커지기는 했지만 자본적지출(CAPEX), 배당금 등 지출이 있었던 만큼 순차입금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2018년까지 1조원이 넘는 순차입금을 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1년을 기점으로 순현금 상태에 접어들었다. 2021년은 금호석유화학 창립 이래 가장 돈을 '잘 번' 시기다. 코로나19로 금호석유화학의 주력 제품인 NB라텍스에 대한 수요가 치솟으며 한 해 OCF로 무려 2조4070억원이 발생했다. 여기서 운전자본 투자와 각종 지출 뒤 남은 잉여현금흐름(FCF)만 1조6562억원에 달했다.
대거 유입된 현금으로 차입금을 감축하지는 않았다. 대신 현금성자산을 쌓으며 재무 안정성을 강화했다. 2021년 말 금호석유화학의 현금성자산은 1조7639억원으로 직전해(5333억원)보다 1조2000억원 늘어났다.
◇'안전판' 된 유동성, 활용 가능성은 당시 쌓아둔 현금은 재무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21년 이후 금호석유화학의 OCF는 하향 안정화 수순을 밟았다. 2022년에는 7225억원, 2023년에는 5292억원의 OCF가 발생했다.
사업을 통한 현금흐름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2021년 이후로 '쓰는 돈'도 늘어났다. 금호석유화학의 CAPEX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2000억원 미만으로 집행됐지만 △2021년 3550억원 △2022년 4281억원 △5903억원으로 규모가 확대돼 왔다.
지출의 확대로 2017년부터 양수를 기록해 온 금호석유화학의 FCF는 2022년과 2023년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재무체력을 쌓아둔 덕분에 3년 연속 순현금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부채비율(36.8%)과 차입금의존도(11.1%) 등 레버리지 지표도 가장 낮은 수준에 가깝게 관리되고 있다.
단 투자활동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은 신사업 확보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매출 중 대부분은 NB라텍스 등 합성고무와 페놀유도체, 합성수지 등 화학 부문에서 발생한다.
스페셜티 제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기초소재 중심 석유화학사보다는 시황 둔화에 따른 타격이 크지 않다. 하지만 중국발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재무체력을 충분히 갖춰놓은 금호석유화학이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적극적 투자' 기조로 돌아설지에 관심이 모인다.
금호석유화학은 배터리 소재로 활용되는 탄소나노튜브(CNT)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충남 아산에 연산 12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보유 중인데, 증설을 통해 올해 생산능력을 360톤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친환경 자동차 솔루션 및 바이오·친환경 소재, 고부가 스페셜티 분야에서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