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산하 조직을 보면 회사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자금 관리 위주의 '곳간지기'에 역할에 그치는 곳이 있는 반면 조달·전략·기획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된 곳도 있다. 특히 진행 중인 변화는 회사의 '현재' 고민이 무엇인지를 유추할 수 있는 힌트다. 주요 기업 CFO 조직의 위상과 역할, 전략을 조명한다.
삼성전자가 올해부터 IR(Investor Relationship) 담당자를 서병훈 부사장에서 다니엘 오 부사장(사진)으로 교체했다. 여타 삼성 전자부문 계열사와 달리 삼성전자는 경영지원실장(CFO)이 아닌 IR담당이 컨콜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투자자를 대하는 얼굴마담이 바뀌었다.
지난달 31일 열린 삼성전자 2023년 4분기 컨콜에선 IR담당 다니엘 오 부사장의 진행 하에 메모리사업부 김재준 부사장, 시스템LSI사업부 권형석 상무, 파운드리사업부 정기봉 부사장, 삼성디스플레이 허철 부사장, 스마트폰(MX) 다니엘아라우호 상무,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노경래 상무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다니엘 오 부사장은 이번 컨콜이 삼성전자에서 첫 공식무대다. 그전까지 컨콜 진행은 서병훈 IR담당 부사장의 주관이었다. 서 부사장은 작년 3분기 컨콜을 끝으로 자문으로 물러섰고 이번에 IR담당이 다니엘 오 부사장으로 교체됐다.
삼성전자는 여타 전자부문 계열사와 달리 IR담당이 컨콜을 진행한다.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등에서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경영지원실장이 직접 나서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니엘 오 부사장은 2022년 3월 삼성전자에서 영입한 인사다. 미국 MIT 경제학부를 졸업한 그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에서 2008~2013년, 글로벌 투자운용사 블랙록에서 2014~2016년 근무했다. ISS에선 글로벌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투자자에게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배구조 애널리스트와 기업 지배구조 자문으로 일했다.
블랙록에서는 1300개 이상의 북미·유럽 기업의 지배구조 및 ESG 문제를 분석하고 투자 자문했다. 블랙록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기업 지배구조를 기반으로 한 투자를 추구하는 곳이다. 이에 따라 오 부사장은 20년간 주주관리 및 기업 지배구조 분야에서 활동한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이후 글로벌 금광업체인 베릭골드(2016년 7월~2019년 6월)에서 수석부사장으로 IR팀을 이끌었으며 삼성전자 합류 직전인 2019년 7월~2021년에는 글로벌 경영컨설팅 업체 머로우소달리에서 일했다.
오 부사장이 영입됐을 때 업계에서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기존 주주들의 동의를 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ESG 경영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등을 위한 포석이다.
오 부사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이 의결권자문사와 기관투자가 등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예상대로 그가 IR담당 부사장이 되면서 전면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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