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신한라이프와 KB라이프는 신한금융과 KB금융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다. 은행에 뒤이어 순이익 기여도가 가장 높은 계열사들이다. 주요 금융지주들이 숙제로 안고 있는 비은행계열 포트폴리오 강화의 상징과 같은 곳들이다.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가 각각 오렌지라이프와 푸르덴셜생명을 품은 시기는 2018년 9월과 2020년 4월이다. 1년여 차이를 두고 두 리딩금융지주가 유럽과 미국 계열의 생명보험사를 인수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우량한 외계 생보사 인수전에 사모펀드(PEF) 등 다수의 경쟁자를 따돌려야 했다. 공격적으로 높은 인수가격을 써내 고가 인수 논란까지 일기도 했다. 처음 오렌지라이프를 노렸던 KB금융은 한차례 고배를 마시고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했다.
생보사 인수는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두 금융지주사는 오렌지라이프와 푸르덴셜생명 인수 직후 순익이 크게 늘었다. 포트폴리오 확대로 비은행 순익이 빠르게 증가하며 안정적인 금융지주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비은행 포트폴리오가 부족한 다른 금융지주들은 보험사 인수를 타진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건전성 악화 감수 오렌지라이프 인수
오렌지라이프는 네덜란드 계열 ING생명이 전신이다. 오렌지라이프가 매물 시장에 나온 것은 2012년이다. 하지만 KB금융의 내부 갈등과 금융당국의 인수 승인 무산이 겹치며 오렌지라이프 딜은 지연됐다.
오렌지라이프의 매각설이 처음 부상한 것은 2009년이다. 당시 대주주였던 네덜란드 ING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자 보험부문을 정리하는 조건으로 100억 유로의 구제자금을 받았다. 보험부문 정리가 본격화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업거점이었던 한국ING생명 법인도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2012년엔 KB금융이 원매자로 나섰다. 가격도 2조2000억원대로 조율됐다. 하지만 KB금융 내에서 어윤대 회장과 사외이사 간 이견 조율에 실패했다. 결국 ING생명은 MBK파트너스로 넘어가 오렌지라이프로 이름을 바꿨다.
신한금융이 본격적으로 오렌지라이프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2018년 초였다. 당시 국내 금융지주와 외국계 투자자가 오렌지라이프의 실사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신한금융은 같은해 9월 이사회에서 오렌지라이프 인수안을 최종 의결한 뒤 MBK파트너스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당시 신한금융은 지분 4850만주(59.15%)를 주당 4만7400원, 총 2조2989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인수가를 두고 고가 매입 논란이 일었다. MBK파트너스가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할 당시 가격은 지분 100%에 1조7000억원이었다. 재매각을 추진하며 제시한 오렌지라이프의 100% 지분가치는 3조원이었다. 신한금융은 오렌지라이프 지분 59.15%를 2조2989억원에 인수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값에 인수를 성사시켰다.
◇KB, 다수 경쟁자 우위 확보 위해 높은 매각가 써내
미국 푸르덴셜파이낸셜은 2020년 초 푸르덴셜생명 매각을 추진했다. 우량한 외국계 생보사 인수에는 다수 국내 금융기관과 사모펀드(PEF)가 관심을 끌었다. 같은해 3월 본입찰에 참여한 곳은 KB금융과 한앤컴퍼니,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 등이었다.
인수전 초반은 KB금융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경쟁자들이 모두 든든한 우군을 확보한 반면 KB금융은 유일한 전략적투자자(SI)에 불과했다. 당시 한앤컴퍼니는 NH투자증권과 손을 잡고 푸르덴셜생명 인수에 뛰어들었다. IMM PE 역시 우리은행과 손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일각에선 우리금융그룹이 인수금융 제공 이상의 역할도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2012년 ING생명보험(현 신한라이프) 인수에 나섰다가 이사회 반대로 무산된 경험이 있던 KB금융은 공격적인 인수가를 써냈다. 결국 KB금융의 푸르덴셜생명 최종 낙찰가는 주가순자산비율(PBR) 0.78배가 적용된 2조2650억원이다.
당시 생보사의 밸류가 PBR 0.4~0.6배 수준에 분포돼 있음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높은 값을 치른 것이었다. 게다가 푸르덴셜생명의 순익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미래가치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었다. 푸르덴셜생명의 당기순이익은 2012년 2328억원을 기록후 줄곧 하락했다. 직전 연도인 2019년 푸르덴셜생명의 당기순이익은 1408억원으로 전년 대비 14.4% 하락했다.
하지만 생보업은 KB금융이 취약한 분야였다. 당시 KB생명의 영업이익은 70억원 가량으로 업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을 품에 안으면 보험 부문 이익과 업계 순위를 단번에 올릴 수 있었다.
3연임을 노리고 있던 윤종규 회장의 거취와도 맞물려 있었다. KB금융의 경영진 성과지표에서 비재무 부문에 점수를 부여하는 항목에는 '그룹 사업모델 및 고객 중심의 서비스·프로세스 혁신'에 주안점을 둔 항목이 있다. 이를 통해 구조적 경쟁 우위를 확보했는지, 그룹 역량 강화 및 'One-Firm KB 구현'을 이뤘는지 등을 평가하는 두가지 지표다.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통한 비은행 강화가 윤 회장의 3연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았다.
◇ 신한·KB,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 성공
초기 고가 논란이 있지만 양사의 선택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은 외국계 생보사 인수 이후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에 성공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신한금융의 비은행부분 당기순이익 비중은 37%다. 10~20% 수준에 그치고 있는 타 금융지주보다 탄탄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이 기간 계열사별로 보면 신한라이프는 427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신한은행(2조5991억원)과 신한카드(4691억원)에 이어 계열사 순익 3위를 기록하고 있다.
KB금융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19년 31%이던 비은행 계열사의 순익 기여도는 이듬해 40.3%로 뛰었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KB금융의 비은행부분 당기순이익 비중은 37.4%다.
그룹 내에서 KB라이프가 차지하는 입지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올해 KB라이프는 280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KB국민카드(2724억)을 앞질렀다. 이는 KB국민은행(2조8554억원)과 KB손해보험(6803억원)에 이어 그룹 내 3위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